"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3일 오전 6시 40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병원 3층. 영정 앞에 모인 사람들은 고인이 생전에 애창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보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선창으로 시작된 노랫가락은 하나둘씩 퍼져 장례식장을 울렸다. 사진속의 고 김 고문은 이들의 노래에 웃음으로 답했다. 실무자가 마지막 “마지막 조문”을 알리며 마지막 예를 표하라고 했다. 조문을 하려던 사람들이 계속 들어섰지만 이들을 막지는 못했다. 가족들의 발인제가 진행됐다. 큰 아들 병준씨가 영전 앞에 무릎을 끓고, 가시는 길에 국화꽃 두개를 놓았다. 하얀 천으로 둘러쌓인 고인의 나오자 부인 인재근여사는 한손에 성경책을 들고 쏟아지는 울음을 삼켰다.
8시가 조금 넘어 고 김 고문의 영정을 싫은 버스는 영결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으로 떠났다. 성당으로 향하던 버스는 한국기독교연합회관(KHCA)에 잠시 섰다. 이 곳은 고인이 민청련 활동 당시 피난처이자 근거지가 됐던 장소로, 동지들과 함께 울고 웃던 장소다.
8시 40분께 운구가 예정된 시간모다 조금 늦게,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성당에는 10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천주교정의실현사제단의 한 신부는 ‘성폭행 당한 여자를 몸이 찢어지는 위험을 무릎쓰고 구한 한 청년’의 예를 들며 그를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1부 미사를 집전한 함세웅 신부는 아침에 도착한 로버트 케네디 재단의 케네디 여사의 이메일을 소개했다. 케네디 여사는 이메일에서 1988년 케네디 상을 전하러 한국에 왔다가 갇혀 있는 김고문을 끝내 만나지 못한 이야기, 그 마당에서 무릎꿇었던 장면들을 추억했다.
이어 김 고문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가 합창됐다. “우리들의 변치 않을 사랑으로 어두운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라는 노랫소리가 명동성당 전체에 울려퍼졌다.
2부에는 손학규 전 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이 추도사를 읽어 나갔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해 슬프다"고 했다. 이인영 민주통합당 전 최고위원 "당신이라는 아름다운 별은 졌지만 수백 수천만의 가슴에는 다시 또 김근태의 깃발이 휘날립니다. 당신의 이름을 민주주의 역사의 심장에 새깁니다"라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고인은 이날 고 전태일 열사 동상이 있는 청계천을 잠시 들른 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한편 ‘고문기술자’ 이근안(73) 전 경감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