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 끝까지, 죽을 때까지 (25)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자기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림 속에 자기 자신이 있는 것인지… 백광돌은 그저 감탄에 젖어있을 뿐이었다.
“유리야, 너에게는 엄청난 매력이 숨어있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숨길 수만은 없는 거야. 저 사람들을 봐라. 네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을.”
골프공과 108mm 직경의 통조림 깡통구멍에만 집중하고 있던 유리는 그제야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백발의 노신사, 뚱뚱한 서양 아주머니를 비롯하여 젊은 외국인 청년들, 아리따운 소녀들, 심지어는 호텔 청소를 도맡은 청소부, 정원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싼 채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이걸 어쩌지요? 오빠, 코트 좀 주세요.”
유리는 짐짓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말했다. 그러나 백광돌은,
“아니야. 춥더라도 그대로 있어.”
단호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오히려 등 뒤로 코트를 감추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 행동 하나에 번쩍! 하고 깨우침이 전해져 왔다고나 할까? 그녀는 백광돌에게 눈을 찡긋거린 후 돌연 요염한 표정연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두 유 추라이?”
문법에나 맞는지, 어법에나 통하는지… 하지만 백광돌은 호쾌하게 사람들을 둘러보며 손짓으로 깡통구멍에 공 집어넣기를 권하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저마다 술렁이더니 누군가 먼저 치는 박수에 맞추어 우레처럼 손뼉을 따라 치기 시작했다. 모두들 서서 구경하는 중이었으니 기립박수!
“유리야, 저기 봐라. 저 더블 재킷 입은 사람 말이야. 저 양반이 이 호텔의 총지배인이야. 어때? 멋지게 생기지 않았니? 저 사람을 상대로 작은 게임이나 한 판 붙어볼까? 어떡하든 내기를 거는 거야. 물론 유리가 이기겠지만.”
“이기면 어떡하시려고요?”
“일단 총지배인 재량으로 파티를 열어달라고 하는 거야.”
“그까짓 파티에 초대받으려고 내기골프를 쳐요?”
“아니지… 일단 장을 여는 거라고 보면 돼. 장이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올 거 아니겠어? 지금 이 호텔에 누가 묵고 있는지 알게 뭐냐? 프랑스 장관이 투숙하고 있는지, 헐리웃의 유명 배우가 투숙하고 있는지 알게 뭐냐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거로군요?”
“그럼, 사람 팔자 알 수 없어. 대물을 낚으면 까짓 신희영 쯤이야 모른척하면 되지. 우리가 언제까지 신희영에게 질질 끌려 다니란 법 있니?”
백광돌이 옆으로 다가와 이렇게 속삭이자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지! 인생이란 전투와도 같은 것이지…내 몸에는 전사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지…
“그래요, 내가 잠시 병법을 잊고 있었어요. 방비가 없는 곳은 공격하고 뜻하지 않을 때에 무찌른다. 이것이 전쟁에 능한 자의 이기는 방법이다. 하지만 미리 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손자병법!”
“맞아. 신희영이 우리를 믿는 것까지는 좋아. 하지만 우리를 완전히 하급직원 취급하는 데에는 신물이 난다고. 우리를 믿고 방비하지 않을 때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거야. 우선 총지배인을 구워삶은 뒤에 파티에서 멋진 쇼를 벌이자고. 그 파티에 진짜 백만장자라든지 거물급 정치인이든지, 유명한 축구스타나 연예인이 나타나기만을 바라는 거야.”
“좋아요, 로또 맞추기보다는 쉽군요.”
유리는 문득 팜므파탈의 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허리를 곧게 펴자 얇은 티셔츠 위로 풍만한 젖가슴의 윤곽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