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열망을 품은 도전 (1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아니, 누드 라운딩을 한다고요? 아빠, 제 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이에요?”
강유리는 보르도 시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아버지 강준호가 누드 골프 라운드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기가 찰만도 했다. 강준호는 신희영에게 확실히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다고 유리를 타이르곤 했지만 그녀로선 난감할 뿐이었다.
“좋아요. 아빠와 나는 함께 옷을 벗고 라운드 할 수도 있어요… 까짓 거, 가족이니까 두 눈 질끈 감으면 된다고 쳐요. 하지만 매니저 백광돌 씨 앞에서 어떻게 내가 옷을 홀랑 벗고 골프를 치냐고요?”
“네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신 여사가 물귀신 작전을 쓰는 걸 어쩌겠니? 네가 함께 누드 라운딩을 하지 않으면 신 여사도 라운딩 하지 않겠다는 걸?”
“그 할망구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정말.”
옥신각신, 한참을 어르고 달래도 강유리의 마음을 풀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문의 복수를 위하여 사생활이나 인간성 따위는 과감히 버리기로 작심하지 않았던가. 여태껏 계획한 대로 잘 이끌어 오다가 까짓 누드 라운딩 때문에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서야 되겠는가. 처음 먹었던 마음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결실을 이루게 되지 않겠는가.
“초지일관이란 말이 있지 않니? 유리야,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밀어붙이자. 네가 조금만 더 희생하면 우리가 잃었던 것을 모두 되찾을 수 있다고. 이번에 신 여사와 홀랑 벗고 골프를 치기만 하면 신 여사와 나 사이에는 강력한 유대감이 생기게 된단 말이다. 신 여사가 누구냐? 제련 그룹의 왕회장 아니냐?”
“제련 그룹의 진짜 회장은 유민 이지요, 아빠.”
“모르는 소리. 신 여사와 유민 회장은 곧 이혼하게 되어있어. 신 여사 앞으로는 어마어마한 위자료가 굴러들어오고, 나는 신 여사의 새 남편이 된단 말이다. 그때까지는 죽어도 고! 못 먹어도 고야!”
“…아빠!”
이왕 상추쌈을 먹었는데 호박 쌈인들 못 먹을까? 강유리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해보니 이미 너무 깊이 발을 내딛은 셈이었다. 이제는 발을 빼려고 해야 뺄 수도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문득 유민 회장의 농간 때문에 아버지 강준호가 경영하던 골프연습장이 망해 넘어가던 날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날, 포크레인에 의해 철거되던 골프연습장을 보며 마른 눈물을 삼키고 치를 떨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좋아요, 어차피… 베트남 크루즈 선 갑판 위에서는 숱한 남자들 앞에서 옷 벗기 골프도 쳤는데 뭐.”
“유리야, 내가 제련그룹을 집어삼키는 그날까지만… 참아다오.”
잠시 신파극이 연출되었지만 강유리는 즉시 마음을 다잡고야 말았다. 역시 그녀는 당찬 신세대 숙녀였다. 그 까짓 알몸 좀 보여준다고 어디가 덧나? 니스 해변에 줄줄이 벗고 누워있는 유럽 아가씨들은 모두 어디가 덧난 여자들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뭐라고요? 유리 양과 내가 누드로 골프를 쳐요? 누드라면… 홀랑 벗고?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로 홀랑?”
뒤늦게 강준호의 계획을 전해들은 백광돌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남자였다. 그는 곧 마음을 다잡는가 싶더니 밝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유리가 심청이와 다를 바 없군요.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만 효녀인가요,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는 눈앞이 캄캄해져 옴을 느꼈다. 사랑을 하면 장님이 된다고 했던가? 그는 어느새 유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사랑은 완전한 합일이나 완전한 연소를 꿈꾸게 하지만 항상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는 긴장했던 것이다. 유리의 아름다운 자태와 성적 매력을 동시에 누리며 골프를 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에겐 꿈만 같았으므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