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열망을 품은 도전 (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아는 것이 흠’ 이란 속담 패러디가 있다. 아는 것이 힘이어도 억울할 판인데 아는 것이 흠이라고? 바로 모나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니스’에 3개월간에 걸친 장기간 골프 부킹을 하고 호텔을 예약한 신희영을 빗댄 말이었다.
“애초에 ‘리용’에 호텔을 잡았어야 편한데… 날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자기들은 빈 몸으로 걷지만 우린 이게 뭐냐고요? 양 손 가득 생수에 둥글레차에, 물휴지에, 화장품 케이스에, 어깨마다 골프백을 메고… 우리가 뭐 노예인줄 아나보죠?”
불어를 못한다는 죄로 한국으로 쫓겨 간 공 과장과 박 대리 대신에 새로 잡혀온 조 차장이 투덜대고 있었다. 그가 투덜대며 속삭이는 상대는 역시 함께 잡혀 온 천 부장이었다. 조 차장과 천 부장은 불어를 잘 한다는 죄목으로 머나먼 프랑스 남부지역까지 강제징용 되어 온 셈이었다.
“조그맣게 말해, 이 사람아. 치도곤 맞으려고 환장했어?”
천 부장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바짝 붙인 채로 눈을 찔끔거렸다. 니스에 도착한 첫날, 그들은 불어를 잘 하는 덕에 호사하게 되었다며 감격해 마지않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매일같이 골프를 칠 수도 있게 되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그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현실은 암담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조 차장, 내가 밥숟가락 놓기 전까지 둥글레차 한 주전자만 준비해 와요. 숭늉처럼 구수하게 끓여서 말이야. 프랑스 것들은 왜 이렇게 커피를 쓰게 마시는지 몰라.”
신희영이 이렇게 명령하면 조 차장은 즉시 둥글레차를 준비하기 위해 시골 마을을 뛰어다녀야 했다. 하와이에서 대충 예약한 골프장이 니스 다운타운에서 한 시간 거리나 떨어진 깡촌에 외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호텔도 골프장 인근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둥글레차를 마련하려면 한인 교포가 살고 있는 다른 마을까지 다녀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천 부장, 내 골프백 좀 메고 가요. 난 허리가 부실해서 원…”
신희영이 이렇게 엄살을 떨면 천 부장은 힘 좋은 머슴처럼 어깨에 골프백을 멘 채로 머나먼 길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왜냐고? 그야 시골구석에 자리 잡은 호텔이라서 마땅히 대절할 택시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골프장과 호텔과의 거리가 걸어서 15분 정도였으니 차제에 메고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 부장, 몬테카를로 랠리가 며칠이나 남았지요?”
그런가 하면 신희영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이렇게 묻곤 했다. 이를테면 골프를 치면서도 마음은 콩밭 즉, 아들 유호성에게 가 있었다는 말이다. 유호성은 그 흔한 휴대전화도 지니고 다니지 않았으므로 도무지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서울 본사에 연락해도 유호성이 묵고 있는 호텔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아무도 모를 리는 없겠지. 이 모든 것이 유민 회장의 단속 때문임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언제까지 몬테카를로 랠리가 열리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거지? 정말 미치겠어요. 아무리 내 남편이지만 어쩜 사람이 그렇게 독할까? 호성이가 묵고 있는 호텔 좀 가르쳐 주면 어디가 덧나? 내가 그 녀석을 꼬셔 갈까봐?”
그녀가 이렇게 분통을 터뜨릴 때마다 강준호는 그녀를 달래기에 바빴다.
“호성 군을 골프선수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호언장담 하신 대가지요 뭐. 어떡합니까? 랠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가 만나는 수밖에 없지요. 어쨌든 간에 랠리가 시작되면 아드님을 만날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된 후에 만난들 뭐합니까?”
“뭐하긴요? 자동차 앞에 드러누울 거예요. 그 위험한 짓을 왜 해?”
“과연 그러실 수 있을까?”
“누가 뭐래도 우리 호성이는 골프선수로 키워야 해요. 강 프로가 좀 도와줘요. 어떻게든 해보라고요. 재벌 후계자가 창피하게… 운전수가 뭐야? 운전수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신희영은 눈 꼬리를 바짝 치켜세우곤 했다. 눈치 빠른 천 부장과 조 차장은 그녀의 눈 꼬리가 올라갈 기색을 보이기만 하면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곤 했는데… 손자병법을 모르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36계 줄행랑이 제격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