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계열사 10여개 SLS그룹 키워내…뇌물공여등 혐의로 검찰수사 현재는 신불자 전락
한때 ‘고졸 신화’의 대명사로 불렸던 이국철 SLS회장이 이제는 ‘신용불량자’로, 혹은 정권 실세에 비자금을 댔던 ‘실패한 로비스트’로 전락하는 굴욕을 당하고 있다.
40대의 젊은 나이로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SLS그룹을 일군 이 회장은 늘 당당하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지난 2008년 11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진흥확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조선업계 현황에 대해 스스럼없이 질문을 주고 받았을 정도로 적극적이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회장의 성공담은 10대 때부터 시작한다. 사업에 실패한 부모님 때문에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그는 일반계 고교가 아닌 국립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철도고는 학비가 전액 국비로 지원돼 집안이 어려운 수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 회장은 졸업 후 서울지방철도청 기능직 9급 공무원으로 취업했고, 22세 때는 최연소 새마을호 기술직 승무원이 되기도 했다.
이 회장이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지난 1992년. 철도부품 공장 ‘디자인리미트’를 설립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98년 옛 해태중공업 창원공장을 인수해 철도차량시장 진출을 본격화했고, 2005년에는 경남 통영의 신아조선을 인수했다. SLS중공업(철도 차량 제작 및 공급)과 SLS조선(선박 제작 및 공급) 운영으로 ‘바다(Sea)ㆍ땅(Land)ㆍ하늘(Sky)에서 큰 족적을 남기자’는 사명의 의미 중에 두 가지 뜻은 이룬 셈이다. 지난 2009년에는 1조원 매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성공의 단맛’을 오래 맛보진 못했다. 조선소 인수를 계기로 시련이 닥쳐왔다. 분식회계 의혹을 받아 강도높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것은 물론, 2009년 9월에는 뇌물공여 및 허위공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았다. 그해 12월 SLS조선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창원지법으로 부터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빚을 감당하지 못했던 이 회장은 현재 신용불량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 역시 충격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지난해 12월 타계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젊은 나이에 조선소를 인수할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았던 이 회장의 몰락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동정받을 선량한 기업인인지, 아니면 무책임한 폭로자인지 온 나라가 귀를 곧추세우고 있다.
신소연 기자/carrier@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