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인정사정 볼 것 없다 (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불현듯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다섯 명의 무희들이 동시에 풀몬티!를 외치기 시작했다. 풀몬티… 이른바 홀딱 벗고 보여주는 나체쇼를 시작한다는 예고였다.

“어머나, 이러면 안 되는데… 강 프로님, 우리 저런 거에 연연하지 말고 플로어에 나가서 춤이나 추실래요? 탱고 잘 추세요?”

포르 우나 카베자… 하필이면 스피커를 통해 탱고댄스가 흘러나올 건 뭐란 말인가. 탱고의 세계적인 스타 카를로스 가르델이나 혹은 탱고계의 혁명가로 일컬어지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곡을 듣다보면 저절로 욕망의 힘을 느끼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욕망의 힘! 욕정의 힘! 도대체 뭐가 다를까?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에서 알 파치노가 젊은 처녀를 품에 안고 추던 그 황홀한 탱고음악, 포르 우나 카베자!

“잘 추지는 못하지만…그래도 한 번 땡겨 봐야죠.”

탱고란 어떤 춤인가? 대서양을 누비던 아르헨티나의 난폭한 선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귀항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어디였을까? 발로 딛고 선 얇은 널빤지 아래로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머리를 들면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를 뿐. 검고 날카로운 생선을 퍼 올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원들이 뭍으로 귀향하여 제일 먼저 맡고 싶어 한 냄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차례대로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1,여인네의 분 냄새를 제일 먼저 맡고 싶었을 것이고… 2,그러기 위해서 곧장 술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며… 3,그런 까닭에 탱고란 춤은 상대방과 골반 뼈를 맞부딪치며 땀을 섞는 춤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아하게 드레스 자락을 날리며 플로어를 도는 춤이 아니라 격하게 상대방을 품은 채 야생동물처럼 발끝을 곧추세우고 스텝을 밟는 춤!

지금 강준호의 심정은 오랜만에 뭍으로 귀향한 아르헨티나의 선원과도 같았다. 그는 한 손을 신희영의 부드러운 목 뒤로 끌어올리고, 나머지 손으로 어느새 그녀의 엉덩이 부분을 당겨 붙이는 중이었다. 마침 나체쇼를 벌이던 다섯 명의 무희들에게도 어느새 각자의 파트너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 파트너들은 정장 차림이었는데, 제대로 갖춰 입은 남자가 알몸의 무희를 끌어안고 탱고 스탠스, 탱고 홀드, 탱고 포지션을 아우르며 발끝의 픽업을 연출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강 프로님, 흥분하지 마시고… 양 무릎을 붙이세요. 그 다음에 턴!”

저절로 야생의 스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탱고 홀드, 어깨를 늘어뜨리고 오른손 중지로 여자의 등뼈를 천천히 훑어 내리는 자세. 홀드를 세우고 상반신의 힘을 뺀 채로 바디를 움직이고, 아랫배에 힘을 바짝 주면… 아, 이 얼마나 솔직한 자세인가. 언젠가 고관 부인과 처음 만나 블루스를 출 때처럼 바짓가랑이에 주먹만이나 한 감자를 집어넣을 필요도 없었다.

“브라보!”

하리오즈 클럽을 반쯤 메우고 있던 손님들은 한 결 같이 나체쇼를 추는 무희들 주위에 모여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봉춤도 아니고 오리지널 탱고도 아니었지만 번쩍이는 봉을 끼고 돌며 흐느적 흐느적, 정장 차림의 파트너와 몸을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는 모습은 선정적이긴 하지만 화끈했다. 그러니 강준호와 신희영이 골반 뼈를 맞대고 탱고를 추든, 양 허벅지 사이로 무릎을 비벼대든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점점 신 여사를 향해 내 마음이 흐르는 걸 느낍니다. 미치겠어요.”

언젠가는 한 번쯤 읊어야만 할 대사였다. 강준호는 그 D-Day로 오늘을, H-Hour로 지금 이 순간을 택한 것일 뿐이었다. 천상의 낙원 하와이에서 낮에는 골프 치고 밤엔 술 마시는 신선놀음을 하다가 자칫 복수의 칼날이 무뎌지기라도 하면 큰 일. 지금은 신희영이 비록 품 안에 안겨 있을지언정 언제 손을 털고 달아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 좋아요. 강 프로님.”

신희영의 리드에 몸을 맡긴 강준호가 귓불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자 그녀는 아랫배에 힘을 바짝 주면서 다리를 밀착시키기 시작했다. 조명은 어두웠고 뭇 사람들의 시선은 나신의 무희에게 향해 있었으며 박수와 음악소리는 점점 커져가는 중이었다. 이 타임에는 박자며 율동을 떠나 그녀를 힘껏 끌어안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 이걸 어쩌나. 그가 골반을 강하게 밀어붙이자 얌전하던 지겟작대기가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모르긴 해도 아방궁의 타락한 선녀를 무찌르라는 계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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