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죽음의 계곡 (37)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빅 아일랜드의 아침이 밝았다. 코알라코스트의 아침은 왕성하게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으로부터 시작된다. 강렬한 태양이 에메랄드빛 바다를 헤쳐 오르면 어느새 푸르메르가 붉은 꽃잎을 활짝 연다.
그래서일까? 마우나케어 골프장의 심벌마크는 아름답게 피어난 푸르메르 꽃잎 형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 번호판에는 무지개가 하나씩 그려져 있는데, 잠시 빛나다가 사라지는 무지개, 혹은 푸르메르 꽃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표식으로 삼아 잡아두고 싶은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기도 하다.
“그만 일어나셔야 합니다. 회장님.”
이 화창한 아침에 공 과장과 박 대리는 꼬랑지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끗발 낮은 게 죄지, 아무렴… 그들은 상사를 모시고 출장 온 하급 사원이란 죄 때문에 밤새 뜬눈으로 지내고도 모자라 아침 댓바람부터 그들을 깨우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는데 벌써 깨우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뭐가 어떻다고요.”
“골프 티오프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지금 일어나셔도 서두르지 않으면 늦습니다.”
“참, 그렇지. 우리가 골프 치러 온 거지? 일 났네 일 났어.”
종일 비행기를 탄 연후에 밤새도록 사랑 병에 걸려 있다가, 새벽녘에야 잠들었으니 제 시간에 일어날 리 만무했다. 신희영은 물론 강준호, 한승우, 백광돌, 강유리… 모두 매한가지였다. 특히 유한솜은 아예 송장처럼 잠들어 있어서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눈 뜰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걸 어쩌지요? 티오프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아침식사 하긴 글렀네. 어서들 골프복부터 챙겨 입으세요. 어서요, 어서!”
호떡집에 불이 난들 이토록 수선스러울까? 여덟 명, 두 팀으로 예약을 해놓았으니 한 명이라도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유한솜은 남겨놓고 출발하기도 했다. 한 팀엔 세 명이 조를 이뤄야 할 판이었다.
“박 대리, 달려! 먼저 달려가서 접수하고 그린 피 지불하세요. 공 과장은 호텔 프런트에 맡겨놓은 골프백 좀 찾아서 싣고 와요.”
그들은 혼비백산한 듯이 골프장을 향해 달려갔다. 강유리는 미처 신지 못한 골프화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슬리퍼를 신은 채 달려가면서도 손거울을 보며 아이라인과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칼 위에 빨간 운동모를 눌러쓰니 그나마 군계일학,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여서 안쓰럽기만 했다.
“회장님, 조금 전에 우리 뒤 팀이 라운드를 시작했답니다. 죄송합니다만 3홀부터 비어 있다는데 어떡하지요?”
“그나마 3홀부터라도 칠 수 있다니 천만다행이지요. 어서 3홀로 골프백이나 옮겨달라고 하세요.”
“골프백은 저기 카트에 실려 있습니다. 저희가 3홀로 모실 테니 어서 카트에 오르세요.”
그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서 카트에 올랐고, 공 과장과 박 대리는 정신없이 카트를 몰아 3홀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여유를 찾았는지 강유리도 슬리퍼를 벗고 골프화로 갈아 신는 중이었다.
“이야! 저 페어웨이 색깔 좀 보세요. 참 아름답지요? 그나마 바닷물을 넘겨서 티샷하는 3홀을 빼먹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은 겁니다, 우린.”
강준호가 3홀을 가로지른 바닷물을 보며 너털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마침 파도가 흰 포말을 몰고 오는 중이었으므로 쏴아-촤르르! 하는 소리만이 사방으로 퍼져 갈 뿐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