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90년대 어느 해 일본 출장길, 교토에는 벚꽃이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 꽃잎의 멸(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눈처럼 내리는 벚꽃, 그 사이로 온통 금빛인 절이 보였다. 금각사(金閣寺)였다. 함박눈 같은 벚꽃과 장엄한 금빛 절의 대조 앞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벚꽃에서 출발한 생각은 금각사란 소설로, 소설보다 죽음의 장면으로 기억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로 이어졌다.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극우주의자로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며 육상자위대 옥상에서 할복이란 충격적인 최후를 맞았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란 말이 있다. 한꺼번에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버리는 벚꽃, 특히 주저하지 않고 아름답게 지는 벚꽃에서 일본사람들은 사무라이를 떠올린다. 미시마 유키오의 사무라이 같은 죽음에도 벚꽃이 보인다. 나라를 위해서 벚꽃같이 피고, 벚꽃처럼 단호하게 지는 것. 그곳에 가미가제의 정신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이맘때다. 일본은 벚꽃이 한창이다. 대지진에 쓰나미에 원전 사고까지, 사상 최악의 재앙에 일본열도가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벚꽃은 한참 피고 있다. 무심한 벚꽃의 만개(滿開)와 여기에 대비되는 일본인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린다. 어쩌면 벚꽃의 짧은 삶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대지진과 인생의 덧없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일본사람들 사이에 쇼가나이(しょうがない: 어쩔 수 없다), 시카타나이(仕方ない: 방법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일종의 숙명론이다.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에서 60대 농부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후쿠시마산 농산물 출하에 대해 ‘섭취제한’이 내려진 다음날, “이젠 안 된다(もうだめだ)”라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어쩔 수 없다는 숙명론도 대지진, 쓰나미, 원전 등 ‘트리플 재해’ 앞에선 힘을 잃는 분위기다. 대피소의 모습은 후진국의 모습과 다름없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언론은 재난 속 일본사람들의 침착함과 이타적인 행동, 배려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물론 대지진 발생 3주에 공포는 더욱 커지면서 일부에서 사재기 등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1976년 미국 뉴욕의 12시간 정전에서 ‘1000만인의 미국인이 1000만가지 행동을 했다’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약탈과 파괴, 살인 등이 난무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의 차분한 대응은 세계 언론의 찬사에 부족함이 없다. 동북부 대지진이 ‘일본 침몰’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일본경제가 하반기에 ‘V자형’ 회복을 보일 것이란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고 복구에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원전 공포가 사라질 날은 기약이 없지만, 그래도 일본은 일어설 것이다. 일본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영토분쟁으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던 중국과 일본, 과거사로 끊임없는 갈등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새롭게 정립될 것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가까운 거리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좁혀져야 한다. 일본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다. 대한민국이 일본인들의 슬픔을 애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재건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간바레 닛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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