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함영훈 사회부장

‘붉은 열매 셋’으로 표현되는 ‘사랑의열매’는 1970년대 부터 ‘따뜻한 겨울’의 상징이었다. 이것과 가장 비슷하게 닮은 식물은 백당나무. 여름엔 평화를 상징하는 흰꽃을 피우고 한 줄기로부터 나온 여러개의 붉은 열매는 겨울까지 오래도록 이어진다. 겨울철 눈꽃사이에서도 꿋꿋이 붉은색을 간직하는 모습이 따뜻한 이웃사랑의 마음을 담고 있다. 꽃명‘Viburnum’의 어원(viere)은 ‘묶는다’는 뜻이다. ‘사랑으로 묶인 세상’. 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하다.

40년간 우리의 겨울을 지켜온 열매인만큼 그 가치는 소중하다. ‘사랑의 열매’ 핀이라도 꽂고 다니면 착한사람의 범주에 든 것 같아 뿌듯하다. 이 소중한 열매가 지난해 가을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에 가장 아파하던 인사 중 한명은 바로 이동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이다. 중견그룹 부방의 총수를 맡으면서도 세계 최고의 봉사단체인 국제로타리 회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나눔’을 인생의 핵심가치를 여겼던 그는 이 열매가 모금회의 감사 문제로 상처받은 직후 회장직을 맡았다.

모금회장은 비상근이지만 그는 “상근, 비상근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이는 ‘사랑의 열매’의 브랜드 가치를 다시 일으켜세우는데 헌신하겠다는 다짐이다. 회사일도 많아도 사랑의 열매가 늘 눈에 밟혀 바깥회의나 손님과의 점심회동이 끝나면 모금회로 달려온다는 그에게서 싱싱한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이동건 사랑의 공동모금회 회장<br />김명섭 기자 msiron@
이동건 사랑의 공동모금회 회장
김명섭 기자 msiron@
이동건 사랑의 공동모금회 회장
김명섭 기자 msiron@ 이동건 사랑의 공동모금회 회장 김명섭 기자 msiron@

-3월24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는데.

▶벌써 그렇게 됐다. 작년 12월 중순 부임했더니 뒤숭숭한 분위기속에서 ‘희망2011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랑의 열매’ 라는 소중한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급했기에 분주히 보냈다. 아직 취임식도 정식으로 하지 못했다. 믿음이 다시 싹트면서 ‘희망2011캠페인’에서 2112억원을 모았다. 목표액(2242억원)의 94.2%이다. 당초 우려를 깬 것이다. 국민들게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연간모금액은 3395억원으로 2009년(3318억원)보다 77억원 증가했다. 생각해보면, 지난해 감사관련 보도 등으로 많은 분들이 실망을 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계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깨끗하고 투명한 기관으로 거듭나는 일이 급선무 같다.

-청년기부터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부끄럽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런 일에 앞서가게됐다. 그냥 평범하게 봐주시면 되겠다. 기업경영을 하시던 선친의 봉사단체(로타리클럽) 활동을 도왔을 뿐이다. 기업인은 주주와 임직원을 위해 자나깨나 돈벌 궁리를 한다. 남을 위해 돈 쓸 기회를 갖는 일은 마음의 행복을 주는데 기업인에게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을수 있다. 함께 봉사를 하던 기업인들끼리 “우리 돈 쓸 궁리도 치열하게 해보자”는 말을 나눈 적 있다. 봉사는 ‘굿 비즈니스’를 ‘잘(well)’ 실행하는 것이다. 나 보다 못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에게 선의의 손길로 일으켜 세워, 삶의 질을 높혀 함께 걸어가는 일, 생각만해도 즐겁지 않은가. 모금회 회장직으로 일하는 동안 내 돈 써서라도 한시절 열심히 해보고 싶다.

-봉사의 기쁨이 뭔지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쥬(사회지도층의 도덕적 덕목)’가 더욱 확산될 것 같은데.

▶봉사의 기쁨이라든지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나고 자란 경주 양동마을에선 아이가 맛있는 과일 하나라도 아이들이 먹으려 들면 부모들이 “손님 드려야지”라고 하면서 늘 손님 우선을 강조하셨다. 멀리서 손님이 방문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비를 꼭 줘서 보낸다. 그런 모습에 숨어있는 마음. 그것이 나눔의 출발점은 아닐지 감히 말씀드려 본다.

-이웃나라 일본이 어렵다. 국내 일본돕기 모금열기가 뜨거운데 일본 모금회와 소통을 하고 있나.

▶심대한 재난 속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일본 국민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11일 지진발생직후 지원을 결정하고 13일 5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14일부터는 헤럴드경제를 비롯한 언론사들과 함께 적극적인 모금활동을 펼쳐 벌써 열흘만에 70만명이 동참했고, 100억원을 훌쩍 넘겼다. 적십자사 등까지 포함하면 600억원을 넘겼다. 여든을 훌쩍 넘긴 독립유공자 이윤철님은 직접 모금회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아픈 과거가 있긴 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더 저들을 위로해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기부하셨고,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최신원(59) SKC 회장이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사람의 참된 도리”라면서 5000만원을 전달하셨다. 일본 아사히글라스와의 합작회사로 자동차 안전유리를 생산하는 KAC에서는 50억원이라는 거금을 주셨다. 앞으로 피해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필요한 사항도 속속 정리될텐데, 현재 일본 모금회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전달 방법 등을 조율하고 있다. 단기간에 끝날일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지원활동을 계기로 한일 양국 국민들 간의 진정한 신뢰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요즘 모금회의 화두는 이 회장께서 강조하신대로 ‘쇄신’인 것 같다.

▶‘세 알의 빨간열매’ 이 브랜드의 가치는 참으로 크고 지고지순한 것이다. 이 소중한 브랜드가 상처를 입었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당연히 올해는 ‘쇄신’, ‘투명’, ‘청렴’, ‘신뢰’에 몰두할 수 밖에 없다. 한 해 평균 2만5000여개의 사회복지기관, 시설ㆍ단체, 400여만 명의 수혜자들에 대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 수많은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빛을 준 기관이다. 인력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지만 조직을 30% 줄였다. 16명의 1급 사무처장을 11명으로 줄였다. 연고지 상피제도를 통해 토착 비리의 소지도 차단했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퇴출할 수 있도록 하는 즉시퇴출제와 문제가 된 액수의 3배를 물도록 하는 징계부가금제도 시행중이다. 정부 감사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징계는 물론이고 사회봉사명령까지 내렸다. 직원들의 청렴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컨설팅도 신청하여 진행 중이다. 3월말이면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종합실천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역별 시민감시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부자가 기부내역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부금 피드백 서비스도 오는 3월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피드백은 SMS 등을 통해 수시로 이뤄진다.

-모금회 사무실 분위기가 사뭇 분주하다.

▶원래 이렇게 바삐 움직인다. 모금한 돈을 기부자의 뜻에 맞게, 또는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배분하고, 연구하며, 나눔의 뜻을 가진분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회사를 경영하지만, 사랑의 열매를 맺는 일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이곳이 늘 밟힌다. 직원들이 불편할지는 몰라도 비상근 답지 않게 여기와서 이것해라 저것 해보자고 한다. 우리 직원들의 사명감은 그 어느기관보다 강해야 한다. 기본업무외에 봉사활동도 다니고 기부도 한다. 나도 1천만원정도 기부를 했다. 사무총장도 매월 급여에서 100만원을 기부하고, 직원들도 몇 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해오던 직장인 정기 기부 프로그램인 한사랑나눔캠페인에 더욱 많은 정성을 보이고 있다. 모금액에서 사무국 경비의 비율을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 법규상 모금 총액의 10%를 쓸 수 있도록 돼있지만, 현재 7% 정도를 사용하고 있고, 이 비율을 더 낮춰갈 생각이다. 사무국 직원은 뜻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화하기도 한다. 월급은 적지만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이런일에 종사하는 분들의 숙명이자 사명이다. 예산 20% 절감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엔 워렌버핏, 빌게이츠 같은 분은 없나.

▶며칠전 공동모금회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2차 총회에서 그분들의 흐뭇한 표정이 참으로 좋아 보이더라. 국내에도 이름 공개를 꺼리며 큰 돈을 내는 분들은 있다. 하지만 아직은 성공한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선진국에 비해 약하다. 지난해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 등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기부 약속’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미국의 경우, 최고 부유층 10%의 기부금이 개인기부 전체 총량의 50%가량을 차지한다. 사회지도층이 어려운 곳을 먼저 보듬으려는 노력과 의지가 중요하다. 정기적인 기부 보다는 일회성, 단발성 기부가 많고, 유산기부와 고액기부가 미약한 점도 아쉽다. 어린 시절부터의 나눔교육이 중요할 것 같다. 미국과 영국 처럼 정규 교과 과정 속에 기부와 자원봉사 등 나눔에 대한 내용을 제도화했으면 한다.

정리=류정일 기자/ ryus@heraldm/com

<이동건회장이 걸어온 길> ▷1938 경북 경주 양동마을 출생

▷서울고, 연세대 정외과 졸업

▷(주)부방테크론 회장, 부방 회장

▷부산정보대, 세명대 재단이사

▷국제로타리 이사, 재단관리위원, 회장

▷주한 이태리 명예 영사

▷외교부 국제 친선 대사

▷2010. 12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만해대상(평화)

▷국제로타리 특별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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