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회> 죽음의 계곡 5

어머니 신희영의 호출을 받고 허겁지겁 회사로 들어서던 유호성을 낚아챈 사람들은 유민 회장을 따르는 가신들이었다. 그들은 평소에 유호성이 습관적으로 이용하는 주차공간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신희영 측근의 가신들보다도 한발 앞서 그를 낚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자님. 저희가 모시지요.”

회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유호성은 왕자님이란 그들의 달콤한 호칭에 그만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하게 풀어져버렸다. 오뉴월 땡볕 아래 포장마차에서 파는 해삼처럼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그러니….

“알았네. 뭘 마중까지 나오시나.”

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순순히 그들을 따라갔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돌아 내려가서 영상자료 상영실 문을 여는 순간 기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자 그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렇지만 곧 만면에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여러분도 재벌 그룹의 왕자가 되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냄새와 표정, 분위기만으로도 그는 곧 미소를 보내야 할 순간임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활짝 웃어주세요. 유호성 선수!”

사방에서 카메라 셔터가 열리고, 정면으로는 방송기자가 007가방만이나 한 동영상 카메라를 코앞으로 들이대고 있었다. 차르르르르~

“역사적인 랠리경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출전하시게 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어? 랠리경기요?”

‘역사적인 랠리경기,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이 두 마디 말로 쫑이 난 셈이었다. 조금 전까지 골프를 칠까 경주차를 몰까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거품이 잔뜩 들어간 이 두 마디 말에 에라, 모르겠다…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사나이의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평소 잘 쓰지도 않던 단어를 조합하여 명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그러자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으므로 얼마전 산비탈의 축사에서 강유리와 사랑을 나누며 다짐했던 약속, 골프선수가 되자던 그 약속은 그만 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강유리도 신희영의 호출을 받고 기자회견장을 향해 회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아버지 강준호로부터 정보를 얻어들었으므로 몸치장에 공을 들이다가 지각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조건 섹시하게, 가급적 화려하게 단장하고 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어머나, 기자들이 아무도 없네? 어쩐 일이에요?”

몸의 에스라인이 확연히 드러나는 짧은 미니스커트, 실크소재로 만들어진 그 짧은 치마는 유리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담쟁이덩굴처럼 허벅지에 달라붙은 채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언제였던가, 베트남 내해에 정박한 크루즈선 위에서 내기골프를 치던 날과 같은 콘셉트였다.

질투심에 불타 두 다리를 끌어안은 듯 찰싹 달라붙은 채 기어 올라간 그 보드라운 스커트 자락을 끌어내리기 위해 허리를 숙일 때마다 언뜻 내비치는 젖가슴의 윤곽은…. 아이고! 기자 아니라 기자 할아버지라도 오금이 저릴 광경이었다.

“글쎄, 어쩐 일인지 나도 모르겠어. 기자들이 어째서 아무도 안 나타날까?”

잔뜩 풀 죽은 신희영이 한숨을 길게 내쉬던 차에 젊은 기자 한 명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섰다. 그 기자 역시 예정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도착한 지각생이었다. 잠시 분위기를 둘러보던 그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며 취재노트를 꺼내들었다.

“다른 신문사 기자들을 왜 기다립니까? 스포츠에 관해서는 우리 신문사가 으뜸이거든요? 단독취재가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건 특종이에요.”

그 젊은 기자는 쥐톨만한 카메라로 연방 유리의 사진을 찍으면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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