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회> 죽음의 계곡 3

유민 회장이 당장 비우고 회의실이나 자동차 경주 자료실로 바꾸라고 한 스포츠마케팅팀에서는 신희영이 직접 나서서 보도 자료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골프팀을 창단하고 아울러 PGA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에게도 후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에 일간지 기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만 했다.

“스포츠 면에 톱기사로 뜨겠지요? 우리 아들 사진도 대문짝만하게 실려야 체면이 서지. 안 그래요? 한 실장님.”

“그럼요. 유리 양과 나란히 포즈를 잡은 사진이 실린다면 금상첨화지요.”

신희영은 어엿한 유민 제련그룹의 전략기획실장인 한승우에게 물었지만 막상 대답을 한 사람은 스포츠마케팅 팀장 강준호였다. 강준호야말로 자기 딸 유리의 모습이 신문 스포츠 면에 큼직하게 실리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애를 태우니 콧등에 땀이 솟을 지경이었다.

“강 팀장님은 선택과 집중이란 요즘 유행어도 몰라요? 한 사람만 선택해서 밀어붙여야 효과가 크게 살아난다고요. 그러니 첫 기사엔 우리 호성이 사진만 싣도록 하세요.”

“그래도 예쁜 여자 사진에 눈길이 먼저 가는 법입니다. 먼저 유리 양 사진으로 시선을 잡은 뒤에 덩달아 호성 군 사진도 함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유리 양을 낚싯밥으로 쓰는 전략입니다. 한 실장님 의견은 어때요? 낚싯밥이 좋아야 월척이 꼬이는 법 아닙니까?”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어찌 놓칠쏘냐? 강준호는 신문에 유리의 사진을 함께 싣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중이었지만 한승우는 역시 냉정했다.

“대중들에게 우리 팀의 대표선수를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편이 좋지요. 강유리 선수 프로필 은 나중에 소개합시다. 오늘 인터뷰에는 유호성 선수만 참여하도록 하는 편이 좋겠어요.”

“글쎄 낚싯밥이 좋아야 월척을 낚는다니까?”

“자, 됐어요. 내가 정리합니다. 오늘은 우리 아들 호성이만 인터뷰에 응하도록 하세요. 강유리 선수 소개는 차후로 미루지요.”

이런 세상에… 강준호는 난감하기만 했다. 어젯밤, 기자회견 날짜가 확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유리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던가. 무조건 섹시하게! 가급적 화려하게! 몸을 꾸며보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어쩌면 유리는 어젯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핫 요가로 몸 속의 노폐물을 빼고 마사지로 피부에 광을 낸 뒤, 미장원에서 신부화장까지 마치고 오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초가 싫다는데 어쩌랴. 신희영 너 두고 보자… 하고 속다짐을 할 수밖에. 어디서 보냐고? 그야 물론 침대겠지. 내세울 것이라곤 운동으로 단련된 몸밖에 없으니 잠자리 외에 그녀를 휘어잡을 만한 곳이 또 있으려고?

“어서 오세요 기자 선생. 나 유민이올시다. 그룹 회장이에요.”

그러나 신희영과 한승우, 강준호가 스포츠마케팅팀 접견실에서 김칫국을 마시는 동안 유민 회장이야말로 발 빠르게 현관 앞으로 달려 나가 기자들을 낚아채고 있었다. 이를테면 맨발로 몸소 나서서 기자들을 껴안는 작전이었다.

“아이고! 회장님께서 손수 맞아주시니 영광입니다.”

일간지 기자들은 유민 회장과 마주치는 족족 지하 2층에 마련된 영상자료 상영실로 안내되었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안내된 것이고, 실제로는 납치와 다름없었다. 신희영이 다과를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는 스포츠마케팅팀이 건물 꼭대기 층인 만큼 유민 회장은 가급적 멀리 떨어진 지하 2층으로 유도한 것이었다.

리비아에 민주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도 천하의 독재자인 카다피를 따르는 인사들이 제법 많지 않았나. 훗날 삼수갑산엘 갈지언정 당장 힘 센 놈 편에 붙어보자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어찌 법인인감을 지니고 있는 유민 회장을 따르는 가신들이 없겠는가? 그들은 즉시 상황파악을 하고 비밀리에 기자회견을 위한 브리핑 준비에 나섰다.

잠시 후 영사막 위에는 스펙터클한 자동차 경주 모습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빠르다, 뜨겁다!’ 라는 화끈한 제목의 3D 동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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