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비상계엄 이후 우리나라 국채 선물을 17조원 이상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들은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에서 국내 주식을 약 3조4000억원 팔고 나갔는데, 국채는 이탈 규모가 그 5배를 넘은 것이다. 한국의 정치 상황이 대혼돈에 빠지면서, 국가의 ‘보증수표’라 할 만한 국채의 가치도 그만큼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한, 국채·주식 시장에서 ‘셀 코리아’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고환율과 내수 부진, 금융시장 불안,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 환경 불확실성까지 한국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처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 6단체장들이 29일 신년 화두로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꼽은 건 정곡을 찌른 것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한국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위기가 복합된 거대한 위기의 파고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심화되는 가운데 버팀목이었던 수출마저 둔화되고 있다”며 “한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한국 경제가 위기다. 이는 더 이상 주장이 아닌 현실”이라며 “반도체와 자동차로 지탱해 온 수출에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됐고, 치솟는 물가에 민생이 무너지면서 내수 저변마저 잠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돌파할 키워드로 혁신 성장을 제시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저성장의 뉴노멀화라는 경고등이 켜졌다”며 “과거의 성장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과감한 혁신을 통해 미래 성장을 위한 토대를 다져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혁고정신(革故鼎新·묵은 것을 고치고 새로운 것을 취함)’의 결단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일본을 넘어서며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성장 정체 현상이 뚜렷하다. 지난해에 이어 내년에도 1% 성장률에 갇힐 것으로 전망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탄핵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세계은행이 한국을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 성공 사례로 평가했지만 1인당 GDP 4만달러 대 진입이 요원하다.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대한상의 최 회장의 말처럼 혁신 성장의 토양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다. 한국 산업이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무버(혁신 선도자)로 대전환하지 않고서는 저상장의 터널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차기 정권의 향방도 혁신 성장을 누가 더 잘 해낼지에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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