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6단체와 국무조정실이 11일 ‘규제혁신 간담회’에서 경제계가 반도체 클린룸에 창문을 설치하는 불합리한 규제를 신속히 개선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소방법에 따라 반도체 클린룸에도 진입창을 설치하도록 한 것인데 이런 규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탄핵 정국으로 경제정책들이 올스톱 돼 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규제를 없애는 것은 미룰 일이 아니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초고도 청정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창문이 있으면 외부 공기나 오염원 등으로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산업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진입창을 설치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행정 편의적 발상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도 적지 않다. 현재 반도체 사업장에는 매년 전체 설비의 10%에 온실 가스 저감 효율을 평가하도록 부과하고 있는데 국제 기준은 절반인 5%다. 이런 규제와 부담이 기업의 발목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경제계는 수시로 규제 개선을 건의해왔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고 한다. 국무조정실이 피드백을 강화하겠다니 듣기 좋은 말로 그쳐선 안된다. 기술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에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끌고 뒷받침해야 한다. 각국이 지원금을 쏟아붓고 규제 완화에 나서는 이유다. 미국은 심지어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환경영향 평가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공장 건설이 지연되는 걸 막기 위해 국가가 나서 장애물을 치워준 것이다. 반면 우리는 반도체 공장을 돌리는데 필요한 전력도 주민 반대로 끌어다 쓰지 못하는 처지다.
탄핵 정국으로 혼란 속에 있지만 성장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일은 멈춰선 안된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은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만큼 강력한 지원과 정책적 일관성이 중요하다. 경제만큼은 여야정이 비상체제를 가동해 신속 대응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과 전력망특별법 제정도 서둘러야 한다. AI나 바이오 등 신산업도 마찬가지다. 적시에 지원하지 못하면 국제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 오죽하면 대만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이 삼성의 기술적 문제를 지적하며 정치 불안으로 더 어려워졌다고 걱정 아닌 조롱까지 보냈겠는가.
기업들은 지금 안갯속을 헤쳐나가는 기분일 것이다. 트럼프2기의 관세 폭탄에 정치 혼돈도 당분간 피할 길이 없어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가운데 한미 재계가 워싱턴에서 모임을 갖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을 비롯한 원자력·조선업 등 투자·공급망 협력에 나서기로 한 것은 의미가 있다. 기업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정부도 할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