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선포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전화로 직접 받았다고 밝혔다. 몇 시간 뒤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문학상 부분 선정기관 대표인 한림원 종신위원 엘렌 맛손은 수상자 한강을 기려 “그의 작품은 (역사적 경험을) 결코 잊어버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며 “(소설 속) 인물들은 상처를 입고 부서지기 쉬우며 어떤 면에서는 나약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거나 질문을 던질 만큼의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여의도와 스톡홀름에서 펼쳐진 대조적인 풍경은 2024년 겨울 한국에서 공존하고 충돌하는 두 개의 시간대, 두 개의 언어를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부정한 역사로 퇴행한 ‘계엄의 시간’과, 한국어가 세계의 축복을 받는 ‘한강의 시대’. 그리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폭력의 ‘증언’과 인간 존엄성의 치유와 회복을 모색하는 ‘시어’가 그것이다. 윤 대통령이 선포하고 3일 오후 10시 23분에서 4일 오전 4시 30분까지 6시간여 계속된 계엄의 시간은 45년만에 재현된 것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바로 그 직전의 비상계엄(1979년 10월 27일~1981년 1월 24일) 하에 벌어졌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다.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와 그 후손의 이야기를 담았다. 4·3사건은 1948년 벌어졌으며, 이로 인해 그 해 11월 17일에서 12월 31일까지 제주도에는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두 개의 시간대와 두 개의 언어 사이 깊고 혼란스러운 골짜기에서 국민이 내리는 명령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을 계엄 6시간의 포박으로부터 풀어내고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동시대로 당장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그 몇 시간 동안 벌어진 폭력과 파괴, 음모의 진실을 낱낱히 밝히고, ‘나약하나 충분한 힘을 가진 이들의 회복과 전진, 질문’의 미래로 우리 공동체를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명령은 자명하나,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의 혼란은 거듭되고 있다. 10일 여당은 내년 2월 또는 4월 기점의 대통령 퇴진 로드맵을 제시하고 당내 논의를 계속했으나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와중에 공석인 원내대표 자리를 두고 계파간 갈등이 다시 도졌다고 한다. 출국금지된 대통령이 여전히 정상외교의 공식적이고 유일한 주체로, 내란 혐의 피의자인 행정수반이 국군통수권자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오는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다시 시도할 계획이다.

더 이상 정치가 국민의 자존심을 뭉개선 안된다. 힘써 이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망가뜨려선 안된다. 계엄과 저개발의 시대를 피와 땀으로 극복해왔던 기성세대에 잊혀졌던 고통을 되살려선 안된다. K-팝으로 대표되는 자긍심 속에 성장해온 젊은 세대들의 자존감을 더 이상 무너뜨려선 안된다. 통치권력의 부당한 행사가 야기한 헌법적 혼란 상태를 즉각 끝내고 국정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한강의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