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는 소비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에서든지 사업자와 대면하지 않고 재화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거래방식이지만, 그 재화를 보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가 구매 의사를 재차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2002년에 제정된 전자상거래법에서는 소비자가 간편하게 계약을 해소할 수 있도록 청약철회권(일명 ‘반품권’)을 규정하였다. 따라서 전자상거래 방식으로 재화를 구매한 소비자는 7일이라는 기간 동안 구매 의사를 재차 판단할 수 있으며, 그 구매 의사가 변경된 경우에 청약철회권을 행사하여 위약금 등을 부담하지 않고 계약을 해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약을 철회한 소비자는 계약에서 발생하는 대금지급의무를 면하게 되는가? 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한 경우에 소비자는 청약 철회에 따라 그 대금을 결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자상거래법에서는 소비자가 청약을 철회한 경우에 재화에 관한 계약만이 해소될 뿐 신용카드사용에 따른 개별여신계약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재화를 반환하더라도 판매사업자가 신용카드 결제를 취소하지 않은 이상 소비자는 신용카드사의 대금결제청구에 대해 거절할 수 없으며, 그 대금을 결제하지 않은 경우에 지연이자를 더하여 지급함과 더불어 신용상의 불이익을 입게 된다. 다만, 신용카드사의 대금결제청구를 받은 소비자는 해당 판매사업자의 다른 채무와 상계할 것을 신용카드사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신용카드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상계하지 않았을 경우에 한하여 그 대금결제청구에 대해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생한 티메프 사태와 같이 상계할 채무가 없는 경우에 신용카드사는 정당한 사유로 소비자의 상계요청을 거절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청약을 철회한 소비자도 신용카드사에게 대금을 결제해야 하므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러한 전자상거래법의 내용은 간편하게 계약을 해소하여 그 계약에 따른 의무를 소비자에게 부과하지 않는다는 청약철회권의 본질과 상반되며, 일반적인 소비자의 인식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비자가 구매 의사를 재고할 수 있도록 부여된 청약철회권이 그 본질에 적합하기 위해서는 전자상거래법상 청약 철회의 효과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소비자에게 철회권을 부여하고 있는 유럽연합 등에서는 소비자가 재화에 관한 계약을 철회한 경우에 재화에 관한 계약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사와 체결한 개별여신계약도 당연히 소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일 학계에서 주장하였던 바와 같이 전자상거래법의 내용이 유럽연합의 법제와 같이 개정되었다면 이번 티메프 사태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소비자는 청약철회권을 행사함으로써 신용카드사의 대금결제청구에 대해 당연히 거부할 수 있으므로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법이 개정되지 않아 다수의 소비자가 고액의 피해를 입게 되었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집단분쟁조정이 성립하더라도 채무자인 티메프에게 책임재산이 없기 때문에 구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는 이번의 사태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며, 향후에도 동일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약철회제도가 소비자 피해를 효과적으로 예방 또는 구제할 수 있는 제도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하여 소비자가 청약을 철회하였을 경우에 신용카드사 등은 소비자에게 대금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고형석 한국소비자법학회 회장·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