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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서울 경복궁 서쪽은 서촌?ㆍ세종마을?…지명 논란 ‘후끈’
-서촌은 역사적 고증 부족...진짜는 서소문.정동 일대

-종로구만 세종마을 홍보 고군분투...서울시 나몰라라



[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 ‘제2의 삼청동’으로 불리면서 관광명소가 된 경복궁 서쪽 지역이 때아닌 지명 논란에 휩싸였다. 똑같은 지역을 두고 한쪽에서는 ‘서촌’을, 다른 한쪽에서는 ‘세종마을’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공식 명칭은 세종마을이다. 그렇다면 왜 서촌이란 이름이 더 유명해졌을까.

16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2009년 1월 한 언론기사에서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를 설명하면서 서촌이란 지명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서촌이 유명세를 탄 것은 2011년 한옥 애호가인 로버트 파우저(미국인) 서울대 부교수와 주민 30여명이 만든 ‘서촌주거공간연구회’라는 모임의 역할이 컸다. 이 모임이 언론에 주목을 받으면서 서촌이 널리 알려졌다.

▶고증 빈약한 ‘서촌’ 명칭=이후 역사학계에서 서촌 명칭에 대한 논쟁이 심심찮게 제기돼왔고, 서촌을 주장하는 측에선 ‘경복궁 서쪽 지역’이란 의미 외에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서촌 명칭의 근거로 ‘서촌오처사정’을 언급한 ‘황학정기’(1928년 발간ㆍ저자 성문영)를 내세웠다. 황학정기는 대한제국 시절 경희궁 회상전 북쪽 후원에 건립한 사정(射亭ㆍ활터)을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황학정기의 논거가 빈약하다는 게 주류 역사학계의 설명이다. 궁술(弓術)의 교범이자 활터의 유래를 자세히 기록한 역사 문헌인 ‘조선의 궁술’(1929년 발간ㆍ저자 이중화)에는 서촌오처사정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우대오터’라는 말을 썼다. 여기서 일컫는 우대는 윗동네로, 한자로는 상촌(上村)이라는 말로 널리 사용됐다. 현재 서촌이 과거에는 상촌으로 불렸던 것이다.

특히 황학정기의 저자인 성문영은 ‘조선의 궁술’을 편찬하는데 관여하면서 뒤늦게 경복궁 서북쪽에 분포된 5개의 사정(현재의 서촌, 누각동 풍소정ㆍ필운동 등과정ㆍ옥동 등룡정ㆍ사직동 대송정ㆍ삼청동 운룡정)을 ‘우대’로 표현하는데 동의했다. 반면 서촌을 주장하는 측의 논거에 따르면 현재 북촌의 명소인 삼청동이 서촌에 포함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서촌은 서소문ㆍ정동 일대=서촌은 실재한 지역일까. 독립신문(1899년 11월27일자), 서북학회월보 제5호(1908년 10월1일자), 개벽 제48호(1924년 6월1일자), 별건곤 제23호(1929년 9월27일자), 민성 11월호(1949년 11월1일자) 등에서 서촌과 그 지역을 직접적으로 언급했고, 특히 개벽과 별건곤, 민성에서는 ‘조선의 궁술’처럼 서촌과 우대를 서로 다른 지역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이들 역사적 문헌에 따르면 서촌은 도시의 방위(方位ㆍ동서남북) 기준으로 한 지명이고, 경복궁 서쪽이 아니라 서소문과 정동 일대를 서촌이라고 불렀다. 종합하면 현재의 서촌은 우대나 상촌으로 불려야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서촌이란 이름이 등장할 무렵 경복궁 서쪽 지역 주민들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주민들과 2010년 10월 ‘세종마을가꾸기회’를 만들고, 이듬해 5월에는 경복궁 서쪽 지역을 ‘세종마을’로 부르는 선포식을 열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로 ‘세종마을’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당시 문화예술인들이 경복궁 서쪽 지역에 모여살면서 조선의 문화융성을 실현한 세종대왕의 업적과도 맥을 같이 했다.

▶역사 왜곡 방치하는 정부=지난 2013년 8월 열린 종로구지명위원회에서도 세종마을에 힘을 실어줬다. 지명위는 “옛 명칭을 살리기 위해선 ‘상촌’으로 또는 새로운 지명인 ‘세종마을’로 불리는 게 맞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세종마을’ 홍보에는 종로구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울시는 세종마을이란 명칭을 알고 있으면서도 각종 관광 자료나 사업에는 서촌으로 표기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정부나 지자체가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셈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잘못된 지역 명칭을 바로 잡는 것이 역사를 지키는 일”이라면서 “옛 명칭을 사용할 때는 역사적 근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본 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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