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에서도 언급된 대기업 사내대출

사내복지 vs. 차별적 혜택 논란 거세져

15억 주택 구매 은행·사내대출로 11억

기업 ‘1순위 근저당’으로 한도 대폭 줄어

삼성전자도 금융당국 요청에 근저당 적용

추가 규제 놓고 금융당국 내부서 갑론을박

사진은 30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
사진은 30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서상혁 기자]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좋겠네요. 일반 직장인은 대출 한도 때문에 내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데요”

요즘 들어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엔 사내대출을 부러워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은 은행에서 대출 한도를 꽉 채워도 집을 사기엔 한도가 턱없이 부족한 판에, 대기업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수억원을 그것도 저금리로 빌릴 수 있으니 “회사에 따라 이제 대출 한도도 달라지는 것이냐”는 박탈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내대출의 파급 효과는 부동산 시장의 과열과 맞물리면서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기업의 사내대출을 뜻하는 이른바 ‘반도체 머니’가 부동산 시장에 유입돼 수도권 집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옵니다. 급기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사내대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사내대출이 알려진 것처럼 모든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는 ‘무적의 대출’인 것은 아닙니다. 주택 가격과 대출 조건에 따라서는 은행 대출보다 낮은 금리 혜택을 누리는 데 그칠 수도 있습니다. 헤럴드경제가 사내대출의 실체와 한계, 정부의 규제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짚어봤습니다.

5억원 사내대출자, 15억 아파트 구매 시 11억원까지 대출 가능

사내대출은 회사가 직원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복지 제도입니다. 주거비와 생활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기업마다 명칭과 조건이 다릅니다. 1억~5억원을 연 1~2%대 저금리로 빌릴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말 그대로 사내 복지 제도입니다. 회사를 위해 일하는 직원에게 일종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죠. 겉보기엔 “회사 복지인데 뭐가 그렇게 문제지?”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논란은 이 자금이 주택 구매에 활용되면서 시작됩니다.

현재 금융당국은 개인에 대해선 DSR이라는 한도 규제를,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대출 총량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꺼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부동산 수요 억제책입니다.

하지만 사내대출은 이러한 금융당국의 깐깐한 대출 규제를 적용받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회사와 직원 간의 자금 거래이기 때문입니다. 용어만 대출일 뿐 은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죠.

이 말인 즉슨, 은행 대출 한도를 모두 채운 뒤에도 사내대출로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일반 직장인보다 주택 구매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가 훨씬 많아진다는 뜻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집니다.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15억원 아파트를 매수하는 직장인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직장인이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최대 한도(DSR 40% 규정 충족 가정)는 LTV(담보인정비율) 40%를 적용한 6억원입니다. 나머지 9억원은 추가 신용대출을 받거나 지인에게 빌리는 등 어떻게든 마련해야만 합니다.

반면 은행 대출 6억원에 5억원의 사내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추가로 마련해야 할 자금은 4억원으로 줄어듭니다. 은행·사내대출로 총 11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내대출 금리가 연 1~2%대라는 점에서 이자 부담도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챗GPT를 이용하여 제작한 이미지]
[챗GPT를 이용하여 제작한 이미지]

실제 올해 들어 사내대출은 폭증하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국내 7대(현대자동차·SK·포스코·한화·롯데·LG·GS)의 올 8월말 사내대출 잔액은 6370억7000만원으로 2022년말 3304억7000만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부동산 투자 열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내대출이 대출 규제 우회로로 사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사내대출이 늘어나면서 집값도 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사내대출 문제가 다뤄졌습니다. 송 의원은 지난 22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도 “일반 시민에 대한 대출 규제를 없애든지, 사내대출도 동일한 선상에서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1순위 근저당’ 조건 적용 시 은행 추가 대출 한도 대폭 줄어

그렇다고 사내대출이 정부의 규제를 마냥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에 따라선 일반 은행과 비슷한 한도를 받게 될 수도 있죠.

주택 구입 목적의 사내대출에 해당 기업이 1순위 근저당권 설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회사가 먼저 담보권을 확보하기 때문에, 이후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기존 근저당권이 대출 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풀어 말하면 ‘1순위 근저당권’ 조건 하에서 차주는 사내대출을 먼저 실행한 뒤, 은행에서 부족한 금액을 추가로 빌려야 합니다.

순서만 달라졌을 뿐인데, 실제로 받을 수 있는 한도에는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투기과열지역 15억원 주택 매입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후 사내대출을 실행할 경우엔 최대 11억원까지 빌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사내대출에 1순위 근저당권 설정 조건이 붙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 차주는 먼저 회사에서 사내대출 최대 한도인 5억원을 빌립니다. 대출 원금은 5억원이지만 근저당은 원금 이상으로 설정됩니다. 연체 리스크 등이 있기 때문이죠. 비율은 통상 110%로 이 경우 총 5억5000만원이 근저당으로 잡힙니다.

이후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방문합니다. 15억원 주택에 대한 은행의 총 대출 한도는 LTV 40%를 적용한 6억원입니다. 하지만 앞선 경우처럼 그대로 6억원이 지급되진 않습니다. 은행은 선순위 근저당이나 각종 보증금을 차감한 후 주담대 한도를 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잡혀있는 근저당 5억5000만원을 차감하면 나갈 수 있는 대출 한도는 5000만원이 되죠.

사내대출과 은행 추가 대출을 합친 최종 대출 한도는 5억5000만원입니다. 1순위 조건이 없었을 때와 비교하면 한도가 반으로 줄었습니다. 오히려 사내대출 없이 은행에서 대출받았을 경우보다도 한도가 감소했죠. 은행 주담대 금리가 연 7%를 향하는 가운데, 연 1~2%대로 싸게 빌렸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입니다.

[제미나이를 이용하여 제작한 이미지]
[제미나이를 이용하여 제작한 이미지]

또 예를 들어볼까요. 수도권 20억원 주택 매입 가정 시 LTV 한도는 8억원이 됩니다. 여기서 선순위 근저당 5억5000만원을 차감하면 2억5000만원의 추가 은행 대출이 가능합니다. 이 경우 총 대출액은 7억5000만원입니다. 만약 1순위 조건이 없었다면 은행 대출 4억원(10·15 대책에 따른 주담대 한도 규제)에 사내대출 5억원을 더해 총 9억원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같은 핸디캡을 적용하더라도 사내대출이 일반 대출과 비교해 월등히 좋은 조건이라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1순위 근저당’ 조건만 추가해도 대출 한도가 폭증하는 일은 막을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각 기업에 자율적인 도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사무처장 시절인 지난 7월 열린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사내대출에 대해 가계대출 규제를 직접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1순위 근저당권 설정과 운리금 분할상환, 다주택자 취급 제한 등의 조건을 걸어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낸 바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요청이 통했는지, 삼성전자는 지난달 무주택 임직원 대상 사내대출 제도를 시행하면서 대출한도는 5억원에 대출금의 110%을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맏형 격인 삼성전자가 1순위 근저당권 카드를 꺼내들었으니 다른 기업으로의 확산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사내대출 직접 규제 가능할까…금융당국, 7월엔 “불가능” 결론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사내대출을 ‘금융규제’의 영향권으로 포섭할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더라도 LTV 한도가 남아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례가 있는 만큼, 근저당 금액을 바탕으로 DSR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간 금융당국은 내부적으로 사내대출의 직접 규제 가능성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난 7월 열린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직접적인 규제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문제이지만 기업이 자체 재원으로 운영하는 복지 제도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명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 이후 사내대출 규제와 관련한 별다른 논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 사내대출 문제가 제기된 만큼, 당국 내부에서 또다시 공론장이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두 금융당국 수장은 국감에서 미묘하게 다른 톤의 답변을 내놨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방법론적으로 당국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힌 반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DSR 도입과 관련해 “금융위와 실무선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내대출 규제에 대한 두 당국의 뉘앙스는 사뭇 다릅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도 아닌데 어떻게 규제를 강제하느냐”라는 입장이라면, 금융감독원은 이보다는 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민간 기업의 복지 제도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개입에 따른 임직원들의 반발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AI 시대를 맞아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을 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사내대출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사내대출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은 물론,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정부가 어떤 쪽에 더 무게를 두는지, 정부가 가진 ‘철학’에 따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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