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워터스, 1992년 ‘죽음에 가까운 쾌락’(Amused to Death) 발매
전쟁과 죽음마저 ‘볼거리’로 전락…상업화된 미디어를 향한 날선 풍자
정의(正義)는 공적 가치를 요구하고, 시장은 ‘돈 되는 기사’에 보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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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근대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장치로 자리 잡아왔다. 이를 위해 언론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 그러나 권력에서 독립한 언론은 살아남기 위해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알아야 하는 것을 보여주라 말하고, 시장은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라 말한다. 언론은 이 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공적 기능은 시장 밖에서 요구받지만, 집단의 생존 여부는 시장 안에서 결정된다. 언론이라는 조직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한다.
1992년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는 ‘죽음에 가까운 쾌락’(Amused to Death)에서 미디어가 전쟁과 죽음,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볼거리’로 바꾸는지를 바라봤다. 그가 겨냥한 것은 세상을 보여줘야 하는 매체가 시장 속 생존을 위해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God wants his secret never to be told.”
(신은 자신의 비밀이 알려지지 않기를 원한다.)
- 로저 워터스, ‘신이 원하는 것’(What God Wants, Part II) 中 -
권력을 감시하는 자리는 권력 밖에 있다
1971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 정책 결정 과정을 담은 국방부 기밀문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스’ 보도를 시작했다. 미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보도 중단을 시도했다. 연방대법원은 “정부가 사전금지를 정당화할 만큼 무거운 입증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출판을 허용했다.
언론 자유의 핵심은 통제받지 않을 자유에 가깝다. 권력이 자신의 행위와 그에 따른 공개 여부를 함께 쥐면, 감시는 성립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렇게 권력과 거리를 확보해왔다. 그러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조직은 스스로 존속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국가 밖에는 시장이 있었다.
“Expressed in dollars and cents”
(우선 달러와 센트로 환산해봅시다.)
- 로저 워터스,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 Part II) 中 -
시장은 ‘중요한 것’에 돈을 내지 않는다
사기업인 언론의 공적 역할에는 비용이 소요된다. 기자를 고용하고, 취재를 지원하고, 기사를 유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국가의 통제와 지원에서 벗어난 언론은 독자, 그리고 광고주가 있는 시장에서 자금을 마련해왔다.
문제는 기사의 공적 가치와 시장가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권력의 비리를 파헤친 보도는 유명인의 사생활이 낸 관심과 수익에 묻히곤 한다. 언론이 지켜야 할 가치와 언론을 먹여 살리는 가치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로저 워터스는 ‘죽음에 가까운 쾌락’을 내놓으며 상업화되고 이윤을 추구하는 미디어가 현실을 하찮고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매체가 끝내 ‘팔리는 것’을 만들게 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곡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에서 전쟁은 스포츠 중계의 형식을 빌린다. 전투와 죽음이 경기처럼 흘러간다. 정보는 상품이 된다. 전쟁도, 재난도, 누군가의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은 어떤 보도에 돈을 지불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여가면서,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의 비중 또한 달라진다.
“Hold the story boys
There‘s some great pictures coming in”
(기사 잠깐 보류해.
굉장한 사진들이 들어오고 있어.)
- 로저 워터스, ‘늦은 밤의 집’(Late Home Tonight, Part II) 中 -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누가 결정하는가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기자와 편집국의 권한이다. 그러나 어떤 기사가 대중에게 닿을지는 필연적으로 이들만의 결정이 될 수 없다. 플랫폼의 추천이 노출을 좌우하고, 대중은 주어진 화면에서 기사를 선택한다. 그 선택은 다시 수치가 되어 편집국으로 돌아온다.
흔히 말하는 ‘클릭수’와 광고 수익은 이후의 취재와 편집의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도 보도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팔리지 않는 기사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권력은 ‘쓰지 마라’고 명령할 수 있다. 시장은 ‘써도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돌려준다. 강제와 보상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어느 쪽이든 언론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외면할 지에 영향을 미친다.
로저 워터스의 앨범 동명의 곡 ‘죽음에 가까운 쾌락’에는 “뉴스라는 사냥개가,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News hound sniffs the air)는 구절이 등장한다. 워터스는 타인의 고통과 스캔들을 좇는 언론을 묘사한다. 보도를 막는 검열이 없어도,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는 시장에 의해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Don‘t be afraid, it’s only business”
(두려워하지마. 사업일 뿐이야.)
- 로저 워터스, ‘신이 원하는 것’ 中 -
또 다른 조건
국가와 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면서, 언론의 독립은 시작된다. 그러나 언론은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시장의 판단이 보도의 기준으로 변하는 순간, 독립은 또 다시 흔들린다.
시장은 기사에 가격을 매길 수 있다. 그러나 로저 워터스는 시장이 무엇을 보도해야 하는지까지 결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 후자를 포기하지 않는 것. 언론의 존재 이유는 그 선택에서 드러난다.
로저 워터스의 음악 속 전쟁은 대중의 자극을 위해 경기로 변질됐다. 화면 밖의 사실을 기록하는 일이 ‘흥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 ‘죽음에 가까운 쾌락’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rainbow@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