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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건식의 도의상마] 오야붕과 꼬붕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상병인 아들이 군대에서 후임 이병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군대라면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는 복종한다’고 하여 상하관계가 분명한데, 사병들끼리 존댓말을 쓰다니 신기하다는 것이다. 요즘 군대에서는 철저하게 상대를 예우하라고 한단다.

지인은 “이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적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라며 지금 군대 분위기에 대해 아쉬워했다. 필자도 “정말?”이라며 시쳇말로 우리군대가 ‘당나라 군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왜 우리는 상명하복의 관계에 익숙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무예세계에도 위와 아래를 분명하게 하는 것을 수련과정에서 중요시한다. 심지어 직장, 학교, 정치권 등 우리 사회 대부분이 이러한 인간관계가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분명 문제가 있다. 상명하복의 인간관계가 만들어낸 권위주의를 악용하면서 우리 사회는 충분히 멍들었다.

수직적 인간관계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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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닌자>의 한 장면, 일본무도에는 철저한 수직적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사회에는 정치권이나 스포츠계, 무예계, 그리고 학교나 기업에 이르기까지 일명 한국형 권위주의가 팽배하다. 이러한 권위주의는 유교적인 충효의식과 일제강점기 오야붕[親分]과 꼬붕[子分]의 관계, 그리고 5.16이후 군사적 권위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현상이다. 이 중에서 특히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는 현대사회에서 ‘힘의 관계’로 악용됐다.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자본과 질서이고, 중동은 이슬람교라는 종교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오야붕과 꼬붕의 인간관계로 나라를 이끌어 왔다고 한다. 여기서 일본의 인간관계는 이들의 역사와 더불어 그들 사회의 근간이 되는 무도(武道)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일본에서 무(武)는 도(道)라 하여 오야붕과 꼬붕의 인간관계를 지켜주는 수단이자 종교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무라이정신과 패거리 모습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정치인들은 파벌정치를 하고, 보스인 오야붕이 요정에 계보원인 꼬붕들을 모아 놓고 정치자금을 주는 관행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내려져 있었다.

오야붕과 꼬붕 사이에서는 권위주의적인 인간관계와 위계질서가 당연시됐다. 특히 범죄집단인 일본의 야쿠자나 한국의 조폭세계에서 오야붕은 꼬붕을 끝까지 책임을 지고, 꼬붕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오야붕을 보좌하고 모신다. 우리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를 당연시하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는지, 이러한 수직적 인간관계의 표현방식도 변했다. 최근 일부 무예인들이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를 교묘히 아버지와 자식, 다시 말해 원래의 의미인 ‘부모로서의 역할’과 ‘자식으로서의 역할’로 표현하고 있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표현만 그럴 뿐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를 강조하는 조직은 ‘줄서기’가 기본이다. 아무리 아버지와 자식이라고 해도 ‘줄서기’가 만연돼 있다면 호칭만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일 뿐 바뀐지 않은 것이다.

수직적 인간관계의 조직은 줄을 서게 하고,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명령을 거역하면, 조직(혹은 가족이라 칭하든)에서 밀려나게 되고 어디에서도 발붙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오야붕은 어떠한 일에 대해 명령을 하고, 그 명령을 받은 꼬붕은 어떤 명령이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알고 보면, ‘명령’은 오야붕이 꼬붕을 거느리기 위한 묘책 중 하나다.

이는 일본의 사무라이 집단에서도 명확하게 보인다. 일본 중세 사무라이들은 오야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것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사무라이정신이 일본을 만들어냈으며 그 문화를 야쿠자와 무도, 그리고 정치판이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조폭, 무예, 그리고 정치판이 그들과 다를 바 없다. 권위주의가 팽배하였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비추어졌다.

원래 우리 문화는 수평적 인간관계였다. 이렇다 보니 문화 역시 횡적 문화로 평등한 가운데 관계를 맺고 있다. 정치만 봐도 왕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분히 민주주의적 요소가 작동했다. 이러한 문화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 다소 어려움은 있지만, 독단이나 독재로 인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와 공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물리적인 힘과 권위를 앞세우고 수직적 인간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일본과는 달랐다.

최근 우리 무예계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250여 개로 분파된 무예세계는 분파의 분파가 퍼지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오야붕과 꼬붕 관계와 같이 수직적 인간관계를 중시한 데 있다. 일본무도계에 있던 부정적인 권위주의를 그대로 반영해 운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오랜 역사 속에 서로를 이끌고 보듬는, 공동체를 강조하고 수평적 인간관계에 대한 유전자가 숨어 있다. 이러한 유전자가 있는 무예인들이 일본의 무도와 유사한 수직적 인간관계를 좋아할 리 없다.

‘무진법’ 전부개정안 발의, 새로운 무예계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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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통무예진흥법 전부개정 대표발의를 한 송기석 의원.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권위주의를 앞세웠던 과거 대통령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오야붕 한 사람을 위한 꼬붕이 아니었나 싶다. 억압하면 움추리던 사람들이 지금은 탈권위주의 대통령과 함께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

무예계도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것일까, 지난 9년 동안 잠자고 있던 전통무예진흥법(이하 무진법) 전부개정안이 지난 18일 발의됐다. 2008년에 제정된 이 법이 MB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들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난 9년간 정부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무예들이 전통이나 정통에 대한 공론화를 원치 않아 법률시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고, 정부는 매일 쏟아지는 무예에 대한 민원을 신뢰하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무예진흥을 위한 법률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을 뿐더러, 무예계를 이용한 사욕이 넘쳐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대선에는 무예인들이 다시 이 법의 조기시행에 대해 불을 지폈다. 하지만 한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무예단체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난 18일 송기석 의원을 비롯한 10명의 국회의원들이 무진법 전부개정안 발의를 했다. 이 개정안을 살펴보면, 그동안 무예인들이 갈망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법에는 국민체육진흥법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무예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자체는 해당지역의 무예를 지원하려 해도 명분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무예도 흙수저와 금수저로 나뉘었다.

법률개정이 무예진흥 기반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많은 무예단체들이 법제정 이후 많은 혜택이 뒤따를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만, 법의 테두리에 들어서면 자유롭게 활동하던 지금과는 달리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투명해져야 하고, 무예에 대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개정안 법률 제11조에는 전통무예진흥업무를 전담하는 전담기관에 대해서도 전담기관이 아니면 비슷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위반 시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제13조)도 추가되었다. 실제 많은 무예단체들이 비슷한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마치 무예의 연합단체라는 명분 아닌 명분을 내세워 단체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개정안에는 기존 법률이 전체 6조항에서 13개조항으로 확대됐다. 9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무예진흥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나타난다. 그런데 왜 이 법률 개정이 이제야 이루어지고 있을까? 정부나 정치권에서 ‘무예’라는 분야는 체육 또는 스포츠 분야의 극히 일부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체육진흥법의 지원대상인 태권도, 유도, 검도, 우슈 등을 제외하면 많은 무예단체들이 군소단체라는 점도 정부나 정치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는 해당지역의 무예진흥을 위해 지원을 하려고 해도 법률적 근거가 없어 어려움이 컸다.

이제 정부는 무예진흥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때가 되었다. 중국의 체육총국이 무예를 관장하고 있고, 일본이 일본고무도협회를 장려해 군소무예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유사종목의 경우는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무예의 유형별 분류를 통해 관리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있다면, 무예계는 정부의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평적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수평적 인간관계는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무예계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끝없는 공부를 했으면 한다. 수많은 무예원로들도 세대간 갈등보다는 세대를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무예계 전체를 위해 살아가는 세상으로 무예인들이 앞장 서야 한다. 무예계가 우리 사회의 가장 선두에서 우리 자손과 우리 사회를 위해 변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오야붕과 꼬붕이 원래의 의미인 부모와 자식처럼 정이 넘치고 수평적 인간관계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 글쓴이 허건식은 체육학박사로 예원예술대 특임교수와 WMC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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