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통주 문화는 가양주(家釀酒) 문화다. 집집마다 직접 술을 빚었단 뜻으로, 임금도 못 말렸던 주호(酒豪) 정철(1536~1593)은 술을 마시려고 술집이 아니라 친구 집으로 내달렸다고 한다. 약재나 식물, 꽃향기 등을 첨가한 각자 나름의 개성 있는 술이 한때 700여 종에 이르렀단 기록도 있다.
곡식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걸러낸 곡주와 쌀만 가지고 빚은 청주를 주로 마시던 조상들이 몽골에서 증류법이 전해진 고려시대부터는 소주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주조법들이 발전했다. 이 시대 대표 전통술 석탄주는 맛과 향이 너무 좋아 ‘삼키기 아깝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방과 가문의 명주들도 이때 등장했다. 서울의 춘주, 평양의 벽향주, 김제의 청명주, 충남의 소곡주가 특히 유명했다.
1907년 조선총독부가 주세령을 내리면서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술이 과세 대상이 됐다. 술 제조를 면허제로 바꾸면서 가정에서 술을 빚는 행위도 금지됐다.
집안과 지역마다 자리잡고 있던 대표 양조장들을 대거 통폐합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약주, 탁주, 소주 외에는 제조하지 못하게 했다. 조선 말 여섯 집에 한 집꼴로 술을 빚던 가양주 문화가 1930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은 뒤 전통주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1965년엔 정부가 양곡보호 조치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대신 밀가루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가 보급됐다.
현행 주세법 상 전통주 개념에 포함되는 것은 ‘농민주’와 ‘명인주’ 단 두 종으로 한정돼 있고 자격제한도 엄격한 편이다.
전통주의 부활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한국 전통주 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시설 현대화와 대중화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규모 전통방식을 따르는 전통양조장들도 얼마든지 대중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지금까지 복원한 술 중에는 전통성을 유지하면서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을 수있는 제품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제는 전통주 상업화에 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고 말했다.
나라마다 고유한 술이 있다. 전통주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전통주를 보존하는 것 역시 민족정신과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는 길 중 하나일 것이다.
글·사진=윤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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