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대한민국 경찰도, 이 나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한지 일주일이 됐던 지난 22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의 마지막회는 의미심장했다. 드라마를 이끌어오던 조승우를 희생양으로 삼은 ‘신의 선물’의 결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충격과 슬픔, 분노에 빠진 시청자들에게 이날 회차분은 많은 점을 시사하며 브라운관을 떠났다.
드라마의 시작은 오로지 모성애였다. 배우 이보영이 맞고 구르고 뛰어 다니며 한 가지에만 집중했던 것은 납치돼 살해당한 을 살리기 위한 일이었다. 드라마가 ‘타임워프(시간왜곡)’라는 판타지 요소를 가져온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이보영이 연기한 캐릭터는 모성애 앞에서 합리적 판단은 집어던진 엄마였다. 때문에 김수현은 드라마에서 도리어 사건을 키우고 위험을 만드는 구멍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제 할 말을 했다.
이날 방송에선 김수현은 딸 샛별의 납치사건에 대한 모든 퍼즐을 맞췄다. 대통령 내외가 나온 영상을 돌려보던 중 이들이 봉황이 그려진 한 쌍의 반지를 나눠 끼었다는 사실을 통해, 딸의 납치사건의 배후엔 영부인이 있다는 것을 추측하게 됐다. 딸이 유괴됐던 당시 남긴 그림을 통해 맞춘 퍼즐조각이다.
영부인은 자신의 아들에게 덧씌워진 과거 살인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샛별을 납치했고, 증거가 소멸된 뒤엔 아이를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영부인의 욕망을 납치계획으로 세운 비서실장 이명한(주진모 분)은 샛별을 돌려보내면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하고, 영부인도 “한샛별이 죽어야 내 아이가 무사한 거군요”라며 어린아이를 희생양 삼기로 한다.
권력자의 욕망과 이기, 부조리로 인한 약자의 희생. 거대한 국가조직 안에서 한 귀퉁이를 채우고 선 아이를 담보로 영부인은 아들을 구하려 했고, 비서실장은 더 큰 권력을 탐했다.
희생 당한 아이 엄마의 외침은 무의미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목 놓아 이렇게 말하는 것 뿐이었다.
“내 아이는 국가의 희생양입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어린아이는 더더욱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 어떤 직무가 아이의 목숨보다 소중한 걸까요?” 김수현의 1인시위는 TV를 통해 생중계됐고, 대통령은 결국 그를 불러들여 독대한다.
“저는 이제 대한민국 경찰도 이 나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들의 살인을 덮기 위해 자신의 비서실장과 모의해 무고한 국민에게 죄를 뒤짚어씌운 아내의 음모를 알게 된 대통령은 그제야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나선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탐욕과 부조리는 잊혀질까. 추락하는 지지율을 붙잡기 위한 정치쇼, 더 강한 권력을 세우기 위한 모략은 지워지지 않는다.
드라마는 국가와 국민의 싸움을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희생자가 필요했다. 때문에 기동찬(조승우 분)에게 결말의 음모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알코올성 해리장애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비서실장 이명한이 기동찬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음모를 꾸미는 데에 필요한 소재였다. 때문에 기동찬은 자신이 샛별을 죽인 살인자라고 오해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하지만 죽음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비극을 끊을 고리로 샛별과 동찬, 두 사람 중 한 명은 죽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다. 드라마가 이 결말을 설명하는 과정은 지난 16회 내내 보여준 것처럼 엉성하기 그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의 캐릭터를 통해 왜 이들 중 한 사람이 희생양이 돼야 했는가를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일 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였기에 힘이 없는 약자인 샛별, 쫓겨난 전직 경찰로 3류 생활을 전전하는 소시민 동찬. 특히 기동찬은 의리있는 경찰이었지만, 력자의 힘에 의해 경찰 뱃지를 스스로 던져버린 거대조직 안의 미미한 존재였으며, 겉은 양아치처럼 보였어도 속은 죄채감과 인정이 뒤엉킨 사회적 약자일 뿐이었다. 드라마는 초반 아이를 희생하는 것으로, 14일 전으로 되돌아가 2주를 보낸 후엔 기동찬을 희생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비극은 늘 약자에게, 소시민에게 먼저 온다. 권력자는 권력을 이용해 정보를 공유하고, 탐욕을 지켜가며, 살아남을 비상구를 닦아놓는다. 드라마에서 김수현은 “이 비극을 끊을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고 했지만, 비극의 고리는 또 다른 약자였던 기동찬의 희생으로 끊게 됐다. ‘신의 선물’이 그린 약자의 희생으로 찾아온 반쪽 짜리 해피엔딩은 이번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현재를 투영해 결코 달갑지 않다. 거듭 확인되는 최악의 연안여객운송시스템, 무능하고 부실한 관련 기관들의 재난방재대처, 국가 위기관리체제의 총체적 붕괴가 국민들에게 자괴와 수치, 분노로 되돌아오는 때다. 차디찬 수면 아래 잠긴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죄책감은 시간이 지난다 해도 금세 아물 상흔은 아니다. 어설픈 스릴러로 정신없이 달려온 드라마의 쓰린 결말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비극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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