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우아하고 비싸다” 비난에도 꿋꿋한 그녀의 패션
남성중심 무채색 국제관료사회에 색으로 변화의 메시지 던져…
귀고리 · 스카프 치장할수록 경제 OK 화려한 스타일 그를 해석하는 단서로
[특별취재팀] ‘부와 명예, 권력 그리고 스타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첫 여성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를 일컫는 키워드 네 가지다. 포브스와 타임 등 경제경영 잡지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자, 보그나 베니티 페어 등 패션 잡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사람’이기도 한 그는, ‘IMF의 여신’으로 불린다.
라가르드 스타일은 진주와 스카프, 럭셔리 브랜드의 수트와 가방으로 요약된다.
그녀의 화려한 차림에는 비난도 따른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옷과 가방을 드는 그가 IMF의 수장인 것은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적지 않다. 눈물을 머금고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유럽 국가의 관료들은 “그의 패션에서부터 괴리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개인의 스타일에 관대한 모국 프랑스에서조차 라가르드의 패션은 그가 공직에 오른 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프랑스 사회당원들은 “공적 인물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아야 한다”며 눈에 띄는 비싼 정장을 입는 것을 비판했다. ‘지나치게 우아하다’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라가르드는 그 같은 비난에도 그만의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ㆍ부와 권력 등을 갖춘 이들이 자신의 지위와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입는 격식 있는 복장)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IMF 총재로서의 세계 금융계 수장으로써의 첫발을 내디디는 기자회견 자리에 그는 분홍색 스카프를 매고 나와 관심을 끌었다. 남성중심의 무채색이던 국제 관료 사회에 그녀는 색으로 변화를 던졌다.
패션 전문가들은 그 ‘지나친 우아함’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라가르드가 가진 능력, 통찰력, 개성 을 나타내는 키워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 스트리트’의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가 졸라멘 멜빵 차림으로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고군분투했다면, 라가르드는 우아하게 나풀거리는 ‘스카프’로 냉정한 국제 금융계를 돌파해내고 있는 것이다.
스타일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라가르드는 부와 명예, 능력을 다 갖추고 있다. 그에겐 3개의 ‘세계의 첫 여성’ 타이틀이 있다. 그가 깬 유리천장은 미국 로펌인 베이커&매킨지의 첫 여성 회장 겸 CEO, 프랑스 역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 IMF 사상 첫 여성 총재 등이다. 여기에 G8(선진 8개국)의 첫 여성 재무장관까지 합하면 ‘최초의 여성’ 타이틀은 4개로 늘어난다.
우아한 패션 감각과 스타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10대 시절 프랑스 싱크로나이즈드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매일 아침 요가를 하는 등의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염색을 하지 않은 은발에 그을린 피부, 탄력있는 슬림한 몸매에 우아한 스타일링은 패션지 보그에 등장할 정도로, 상류층 여성들의 스타일 워너비로 떠오르고 있다.
화려한 스타일 속에는 프랑스인으로써의 자긍심도 자리잡고 있다. 그는 샤넬 수트와 에르메스 스카프, 버킨백 등 특히 고국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를 애용한다. 모두 최고 제품들이다. 주로 사용하는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켈리백은 소가죽으로 된 가방이 1300~1500만원에 달한다. 악어 가죽 등 특수 가죽으로 제작될 경우 5000만원을 호가한다.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제작량이 한정되어 있어 괜찮은 모델의 제품은 오히려 중고가가 백화점가보다 수백만원 더 비싸기도 하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초 ‘대기자 명단’마저 없애면서, 재력 뿐 아니라 연(緣)이 있어야 가질 수 있게 됐다.
라가르드는 1000만원이 넘는 이 가방을 세계 주요 인물들과의 만남에서 바닥에 내려놓는 등 ‘서류가방’으로 사용한다.
패션업계에 미치는 ‘라가르드 파워’도 무시못한다. 그가 2012년 다보스 포럼에서 “I am here, with my little bag, to collect a bit of money(내 작은 가방에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여기에 왔다)”라는 농을 던지며 들어올린 루이비통의 ‘라킷’은 주문이 쇄도했다.
라가르드가 들어올린 라킷은 고객이 직접 가죽 소재와 색, 모양을 선택할 수 있는 오더메이드 서비스인 ‘오트 마로퀴네리(Haute Maroquinerie)’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 기본 1000만원대부터 시작해 악어나 뱀, 타조 등 특수피 사용시 8000~9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국회에 시스루 소매의 샤넬 꾸띄르(디자이너 맞춤복)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고, 다시 그 드레스를 보그지와의 인터뷰에 입어 ‘소장품’임을 나타낸 것도 그의 ‘파워 드레싱’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그러나 그가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유는 고가의 명품 때문만은 아니다. 명품을 더욱 명품답게, 세련되고 우아하게 연출한 모습이 품위를 더욱 높인다는 평가다.
그는 장당 60~100만원 선인 에르메스의 스카프를 애용한다. 스카프 한 장 가격으론 부담스런 수준이지만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여제가 두르지 못할만한 가격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스카프 연출법이 높게 평가 받는다. 각종 패션지들이 주기적으로 라가르드의 스카프 연출법을 소개할 정도다.
지난해 연말 한국 방문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그에게 조각보 모양의 스카프를 선물할 정도로, 스카프는 그가 자주 활용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화려한 스타일은 그를 해석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경제계 안팎에선 그가 귀고리나 스카프로 치장할수록 세계 경제가 ‘괜찮다’는 신호란 분석을 하곤 한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라가르드는 플리츠 스카프를 목에 가볍게 둘렀다가, 꽃처럼 부풀려 묶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연출법을 자랑했다. 특히 풍성한 스카프를 한쪽 어깨에 드리우듯 걸치고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반기문 UN사무총장,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촬영한 사진은 그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스카프를 활용하는지 자랑하는 듯 했다.
1956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 싱크로나이즈드 수영부문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파리 10대학 로스쿨을 졸업해 1981년 미국 로펌 베이커&매킨지에 변호사로 입사했다. 1999년 베이커&매킨지 회장 겸 CEO에 올랐고 2005년부터 프랑스의 상공장관 등을 거쳐 2007년 프랑스 재무장관에 올랐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가운데서 프랑스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그 해 영국 파이낸셜타입스(FT)가 선정한 ‘유로존 최고 재무장관’에 꼽혔다. IMF 총재 자리에 오른 2011년에는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파워 여성 9위에 올랐다. 샤넬의 수트 뿐 아니라 꾸띄르(디자이너가 손수 디자인한 맞춤복) 드레스를 입을 만큼 또, 해외출장 일정 중에 보석 쇼핑을 뜻하는 ‘돌(stone)’을 공개적으로 써 넣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