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對 상인 갈등 수면 아래 잠복 그러나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헤럴드경제=배두헌ㆍ이은지 기자] “이제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5분 정도 빠른 16일 0시 55분께,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건물의 첫 경매 시작을 알리는 경매사의 목소리가 건물 안에 울려퍼졌다.
첫 경매 품목은 오징어였다. 경매사가 호가를 부르자마자 가격을 나타내는 중매인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징어 한 상자에 5만7000원을 부른 A중매인이 첫 낙찰자로 선정되는 행운을 차지했다.
이후 약 2시간에 걸쳐 고등어, 명태, 매생이 등 대중 어종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고, 오전 3시께부터는 고급 활어 경매에 돌입했다.
이날 첫 경매는 시장을 운영하는 수협과 입주 반대 상인들의 갈등으로 인해 주목을 받아왔다. 노량진 수산시장 판매 상인 상당수는 완공된 현대화 건물이 좁고 시장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이전을 반대하고 기존 시장에서 영업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수협은 상인들이 건물 착공 전 면적 등에 합의했는데 이전을 거부해 공영 도매시설 기능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경매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경매 시작에 앞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우려했던 상인들의 집단 항의와 같은 돌발 상황은 없었다. 공노성 수협 지도경제대표이사, 강명석 노량진수산시장 대표 등 수협 관계자와 중매인 대표들은 기념식에서 떡 케이크를 자르며 새 출발을 축하했다.
강 대표는 “오늘은 새 시장에서 첫 경매를 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현대화 사업으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자리매김해 문화와 관광을 융합한 도매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첫 경매는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는 것이 수협 관계자 및 상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장 상당수 상인들은 경매가 끝난 뒤 응찰 물량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경매장에 발길을 끊었다. 새 건물에서 실시하는 경매에서 낙찰된 수산물을 중매인으로부터 구매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던 상인측의 공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중매인 송모(65)씨는 “평소 150~200짝씩 판매했었는데 오늘은 50짝밖에 팔지 못했다.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어수선하다”며 “우리도 상인들의 딱한 처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외부 거래처 공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판매한다”고 말했다.
경매장 옆 소매점 공간은 텅 비었던 며칠 전과 비교하면 수조와 냉장고 등 설비를 옮겨놓은 점포가 증가하긴 했지만 아직 절반도 차지 않은 상태였다.
수협측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것이 대다수 상인들의 입장이었지만 일부 상인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의견이 다양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40년간 장사를 해왔다는 왕모(63)씨는 “(소매점 입점을 위한) 추첨도 안했지만 현재 구시장에서 이사도 안갈거다. 오늘 경매 물건도 안샀지만 그냥 전에 떼어다 둔 걸 팔며 버틸 생각이다”라며 “현재 설비를 모두 옮겨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규격을 맞춰 더 작아진 가게를 주는지도 한참 후에 알았다. 상인들이 똘똘 뭉쳐 안가고 버티다보면 (현대화 건물도) 못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추첨은 받은 뒤 이사를 갈지말지 고민 중이라는 박모(63)씨는 “활어를 팔고 있는 입장에서 생존을 위해 이사를 해야할 것 같긴 하지만 새로 지은 건물의 자리는 분명 공간이 너무 좁아 제대로 판매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현혹시키는 말로 상인들이 동의서에 서명하게 만든 수협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협 관계자는 “당장 내일부터 구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계약기간 만료라 분명한 불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물리적으로 쫓아내진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구시장과 현대화시장 운영을 병행하면서 단계적으로 시설 제한 등으로 상인들이 새 건물로 옮기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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