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6일 초음파기기로 자궁근종을 진단한 한의사와 카복시 기기로 한방 비만치료를 한 한의사에게 의료법 위반이라며 벌금형(유죄)을 선고했다. 의사협회는 즉각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불가 입장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한의사협회는 국민 대다수가 초음파와 같은 기본적인 의료기기에 대한 한의사의 사용에 찬성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시점에서 내려진 판결이라 더 아쉽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최근 한창 논란이 뜨거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한의사와 의사간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자칫 ‘밥 그릇싸움’으로 비칠 양 단체간 갈등에서 관심은 과연 어느 쪽이 국민건강에 보탬이 되고 국가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느냐에 쏠린다.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이 지난달 12일 정부에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자리에서 ‘의료기기 사용 투쟁’ 퍼포먼스로 골밀도기 의료기기를 직접 시연하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이 지난달 12일 정부에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자리에서 ‘의료기기 사용 투쟁’ 퍼포먼스로 골밀도기 의료기기를 직접 시연하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우선 국민 입장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제한으로 한방병원에서 검사(양방)와 진료(한방)를 동시에 받지못해 불편이 생긴다. 가정주부 A씨는 장을 보러가다가 자전거와 부딪혀 손목을 접질렀다. 한의원으로 간 A씨는 심한 붓기로 보아 삔거 같지만 인대 손상이나 골절의 우려가 있으니 정형외과에서 X-Ray 찍은후 재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빨리 치료하고 싶은 마음과 아픈 몸을 이끌고 정형외과를 왕복하는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한방병의원에서 염좌 치료를 받고자할 경우 치료 전 양방병원에서 사전에 X-레이를 찍어야 한다. 이로 인해 환자 1인당 1만4000원의 추가 의료비 지출 발생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 65.7%가 한의사가 엑스레이와 초음파 등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고 반대는 23.4%에 불과했다. 국민들은 양 단체의 밥그릇싸움에는 관심 없고 편의가 더 올라가는 쪽을 선호한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제한은 신규 의료기기 시장 및 일자리 창출도 제약한다. 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전국 210여개의 한방병원과 1만3600여개 한의원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경우 연간 3500억원 이상의 의료기기 산업 신규매출 창출 효과 기대된다. 실제 2010년 의료법개정으로 한방병원의 영상진단기기 도입이 급속 확산된 전례가 있다. 방사선진단장비의 경우 2009년 3곳에 불과했으나 2012년 149곳으로 늘었고, 초음파영상진단기는 1곳에서 24곳으로 늘어났다.

의료기기 사용 제한으로 한의학의 치료효과, 유효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 기회를 박탈당한 부분도 있다. 중국은 의료기기사용 제한이 없어 객관적 진단, 예후 관찰이 가능하다. 이런 차별없는 지원으로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현행 의료법에는 X-레이, 초음파 등 의료기기 사용이 한방 의료행위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때문에 담당부처인 복지부가 명확한 지침을 내려줘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가 직결된 화급한 문제인데도 복지부는 움직이지 않는다. 한의사의 의료기기사용은 2013년 헌재 합헌 결정이 나오고 2014년 규제기요틴 과제로 선정됐으나 이후 복지부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은채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의사가 특정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논란의 가장 큰 책임은 복지부에 있는 셈이다.

한의사협회는 “국민의 가계 의료비 절감, 의료산업 일자리 창출, 한의학 발전을 위해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규제 완화 필요하다”며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의사에게 X-레이, 초음파 등 활용도가 높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지침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복지부에 촉구했다. 의협은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면허 범주의 문제라며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다면 의사면허를 취득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의과대학 및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비중있게 의료기기 관련 교육 및 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같은 주장은 밥그릇지키기로 보일뿐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