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보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는 눈길을 끄는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자신을 김규형 PD라고 소개한 게시자는 이 글에서 “일베의 언어로 쓸까하다 우선은 예의를 갖추어 남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4월 19일 방송 예정으로 ‘일베의 생각’(가제)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 현재까지 다양한 사건, 사고로 논란이 있었던 사이트였지만 단순히 언론에 표면적으로 비춰진 부정적인 측면에만 포커스를 맞추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치·사회 게시판을 중심으로 일베 내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이용자 분들과의 진지한 인터뷰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생각, 의견이나 널리 알렸으면 하는 내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고 적었다. 혹여나 사칭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까 김 PD는 ‘for ILBE.com’이라는 글과 함께 SBS 사원증을 찍어올렸다.
1992년 3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무려 22년간 종교, 소수자들의 인권부터 각종 미제사건을 파헤쳤던 ‘그것이 알고 싶다’는 SBS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으로 최근엔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폭로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작진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다루기로 결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규형 PD는 “‘일베’의 경우 언론은 물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슈를 만들고 있는 사이트다. 호불호도 갈릴 뿐 아니라 5.18 민주화 운동 비하 게시글 등 논란도 많은 일베가 이슈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과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의 현장을 찾아 그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은 프로그램의 기본 방향”이기에 이번 소재 역시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루는 아이템으로 적합했다는 판단이다.
방송분의 구체적인 틀을 잡아놓은 상태는 아니지만 현재 김 PD는 ‘일베’ 회원들을 만나고 있다. 사이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SBS PD님, 저 좀 인터뷰해달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독특한 사연을 전하는 글들이 무려 200개를 넘어섰다. 그 중엔 자신을 ‘소아성애자’라거나 ‘남들이 아파야만 돈을 버는 간호사’라고 소개하고, 일베 회원들도 엄연한 ‘사회의 구성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글에 대해 ‘일베’ 내에선 일종의 ‘떡밥놀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즉,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일베’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예 일베 회원 스스로가 앞서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킨 내용을 취재진에게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프로그램 내용이 전파를 탈 경우 나올 수 있는 비난여론에 대해 “일방적인 보도다” “특정 회원들에게 낚였다”고 방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일베 지키기’라는 해석이다.
김규형 PD는 “제작진은 일베 회원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인터뷰 요청 ‘떡밥’을 던졌다. 그러자 인터뷰를 요청하는 연락이 들어오고 있으며, 출연을 희망하는 분들도 있다”며 “아직까지 사칭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김 PD는 원칙 하나를 세웠다. “프로그램 한 편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사이트를 정의하는 데엔 일반화의 오류가 있다”며 “설사 제작진이 특정 일베 회원을 만나 인터뷰했다고 그의 성향이 일베 사이트로 규정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제작진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 있다”며 “그 안에서 사이트를 규정할 수 있는 공통점이 나올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수도 있다. 회원수도 상당한 데다 비회원들 역시 자유롭게 오가는 사이트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좁혀나갈지는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본지와의 전화통화 중에도 김 PD는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게시글에 언급한 ‘일베의 언어’에 대해 잘 아냐는 질문을 던지자 김 PD는 “ ‘일게이들아 보고있냐! 관심있는 종자들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그들의 언어와 반말투로 글을 쓸 수도 있었다”며 “일베 회원은 아니지만 사이트가 돌아가는 작동논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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