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속내‘를 두고 벌어지는 야권의 행태가 점입가경입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대당 대표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이 여사 신년 예방을 두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독대를 했네 마네, 몇분 동안 접견을 했네를 따지며 드러나지도 않은 이 여사의 속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이 여사가 안철수 의원에게 했다는 덕담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실 주도권을 잡기위한 아귀다툼으로 야권이 갈갈이 찢어지는 이 상황을 이 여사님은 어떻게 보실지는 분명히 궁금한 일입니다. 기자 역시 신정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 일찍 퇴근을 하라는 회사 방침도 거부한채 동교동 178번지, 이 여사의 자택을 찾았으니깐요.
기자는 연말을 맞아 찾아온 각계 인사들로 북적거릴 것이라는 기대로 동교동을 찾았습니다. 인터뷰를 거절당해도 대문앞을 지키고 있으면 손님을 맞느라 마중도 나오는 이 여사, 혹은 산책을 하러 나오는 이 여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회 야당 기자로 발령받은지 한달이 채 되지 않은 기자의 어슬픈 착각이었습니다.
의경 두 명이 지키고 있는 집 앞은 휑하니 비어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기승을 부린 추위가 이 여사의 댁 앞을 더욱 황량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두지 않아 검게 말라가고 있는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 대문에 설치돼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불꺼진 네온 장식, 그 사이로 보이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 여사님의 공동 문패는 연립주택에 둘러 쌓인 이 여사님의 집을 조금은 외롭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오후 1시 50분께에 도착한 기자는 우선 문을 지키고 있는 의경에게 밖에서 기자가 기다린다는 얘기를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곧이어 문을 열고 나온 비서는 “자택 뒤편에 있는 김대중 도서관에 가서 책임자를 만나라”고 했습니다. 총선 출마를 위해 광주로 내려간 최경환 실장에 이어, A 기획실장이 의전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A 실장은 이미 다른일로 사무실을 비운 후였습니다. A 실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여사님이 몸이 안좋으시다”며 “인터뷰 역시 힘들 것이니, 1일날 열릴 공개 행사때 오라”고 했습니다.
이 여사가 하루에 한번은 밖에 나오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대문을 지키던 경찰은 기자에게 “이 여사의 공식적인 일정이 있으면 우리들에게 일정에 대한 아침에 연락이 온다”면서, “오늘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내가 일하는 동안, 공식적인 일정 외에 집밖으로 나오신 일은 없다. 일주일동안 안 나오신 적도 있다. 운동이나 산책은 안 하신다”고 했습니다. 김대중 도서관에서 만난 직원 한 분도 “총리 인사 등이 나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때나 밖으로 나오시지, 웬만하면 나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후 3시 20분께에 굳게 닫힌 문이 열렸습니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씨의 부인 윤혜라씨가 직접 차를 몰고 온 것입니다. 윤 씨는 한 손에는 분홍색 선물 꾸러미를 안고 들어갔습니다. 급한 일이 있었던지 윤 씨는 머무른지 20분 만에 다시 자리를 떴습니다. 윤 씨는 이 여사의 몸이 어떠하신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습니다. 기자가 말을 더 걸려고 하자, 문앞을 지키던 경찰이 나서 제지했습니다. 그 후 문은 우체국 차량이 서류를 가지고 올때만 열렸을 뿐이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경찰의 확인을 거친 후 진행됐습니다.
오후 5시께가 되자, 해가 조금씩 기울고 자택앞 골목도 어둠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사님을 만나는 것은 힘든 것 같았습니다. 자리를 뜨기 직전 다시한번 A 실장에게 예방이 가능하느냐고 물었지만,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 여사의 자택은 철옹성이었습니다. 현 야권 상황에 대해 이 여사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여사님이야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마냥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을 테죠. 하지만 모든 시도가 비서선에서 ‘컷(cut)’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닷새 후인 지난 5일 이 여사의 ‘속내’을 두고 야권이 뒤집어졌습니다. 신년을 맞아 1일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에는 안철수 의원이 인사차 다녀갔는데, 안 의원과 문 대표에 대한 이 여사의 대접이 달랐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 것 입니다. 안 의원은 5분간의 공개면담을 가지고 20여분간 ‘독대’한 반면, 문 대표는 독대를 하지 않고 약 8분간의 만남에 그쳤기때문입니다. 이를두고 이 여사가 안 의원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들이 쏟아졌습니다. 급기야 지난 6일에는 이 여사가 안 의원과 ‘독대’ 한 자리에서 ‘정권교체를 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는 이 여사의 마음이 안 의원에게 기울었다는 추측을 사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이 이 여사의 셋째 아들 김홍걸 씨가 나서면서 해프닝으로 돼 버렸습니다. 김 씨가 보도자료를 통해 “이 여사가 안철수 의원의 말을 듣기만 했을 뿐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이 여사의 ‘속내’는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꼴이 됐습니다.
사진 한 장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휠체어에 탄 김대중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사진입니다. 이 여사는 김 대통령의 속을 김 대통령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라고 하지요. 안 의원, 김한길 의원 등 대표급 인사들이 당을 박차고 나간 현 상황, 이 여사는 정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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