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에 물을 따르고 있다.[챗GPT로 제작한 이미지]
종이컵에 물을 따르고 있다.[챗GPT로 제작한 이미지]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매일 종이컵에 커피 타 마셨는데...”

출근 후 회사에서 커피를 마실 때 하나. 점심 후 카페에서 음료를 포장하며 또 하나. 늦은 오후 잠을 쫓기 위한 음료를 마실 때 또 하나.

하루 3~4개를 사용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종이컵. 그럼에도 성분이 ‘종이’인 만큼, 플라스틱보다 환경이나 건강 측면에서 나은 선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넣는 것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수백만개의 이물질이 음료 속에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를 타 마시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를 타 마시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주된 원인은 다른 게 아니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넣어도 쉽게 ‘흐물흐물’해지지 않는 비밀에 있다. 바로 뜨거운 온도를 견디기 위한 ‘플라스틱 코팅’이 이물질의 범인이다.

뜨거운 물에 플라스틱이 노출되며, 음료 속으로 이물질이 들어가고 있는 것. 종이컵이 미세·나노플라스틱 노출의 또 다른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심코 하루 2~3번씩 정체 모를 물질이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는 셈. 텀블러나 다회용컵을 이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초미세플라스틱 이미지.[123rf]
초미세플라스틱 이미지.[123rf]

22일 기후·환경학계에 따르면 호주 퀸즐랜드대 연구팀은 뜨거운 음료를 담는 일회용 종이컵에서 발생하는 미세·나노 크기의 입자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대상은 플라스틱 소재로 내부를 코팅한 종이컵과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로 코팅된 종이컵 2종이었다.

연구 결과, 두 종류의 컵 모두에서 많은 수의 미세·나노 크기 입자가 측정됐다. 일반 플라스틱 코팅컵에서는 물 1㎖당 약 270만개, 생분해성 소재를 사용한 컵에서는 약 430만개의 나노 크기 입자가 관찰됐다.

한 식당에서 제공된 종이컵과 페트 생수병.[헤럴드DB]
한 식당에서 제공된 종이컵과 페트 생수병.[헤럴드DB]

나노 크기는 눈으로 볼 수조차 없는 수준. 연구진은 해당 입자의 크기가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약 1000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생분해성 코팅컵에서 실제 코팅 소재에서 유래한 60~130㎚, 200~300㎚ 크기의 나노플라스틱을 확인했다.

플라스틱 소재를 막론하고, 종이컵에 담은 액체에 성분이 녹아나오고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종이컵에서 왜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것일까.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종이만으로 컵을 만들면, 액체가 스며들어 쉽게 젖고 형태가 무너진다. 이를 막기 위해 컵 안쪽에 얇은 방수 코팅을 입히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가 플라스틱이다. 사실상 ‘플라스틱 종이컵’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종이컵들도 마찬가지. 가정이나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카페 등 외식업체에서 사용하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강원대 연구진이 지난 2021년 국내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제과점 등에서 사용하는 테이크아웃 종이컵 83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98%가 폴리에틸렌이 코팅된 제품이었다.

미세플라스틱.[헤럴드DB]
미세플라스틱.[헤럴드DB]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담았을 때 플라스틱 입자가 나온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지난 2021년 국제학술지 ‘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종이컵에 85~90도의 뜨거운 물 100㎖를 넣고 15분간 둔 뒤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0㎖의 물에서 약 2만5000개의 마이크로미터 크기 미세플라스틱이 확인됐다. 연구진이 뜨거운 물에 닿기 전과 후의 종이컵 내부 코팅을 비교했더니 표면 형태가 변한 모습도 확인됐다. 당시 조사한 종이컵 5종 가운데 4종의 내부에서는 고밀도 폴리에틸렌 소재 코팅이 돼 있었다.

종이컵.[X(구 트위터) 갈무리]
종이컵.[X(구 트위터) 갈무리]

심지어 플라스틱뿐만 아니다. 종이컵 내부 필름에서 납과 크롬, 카드뮴 등 중금속도 검출됐다. 연구진은 뜨거운 물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런 물질이 음료로 이동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커피가 아닌 차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또 하나 주의할 부분이 있다. 바로 ‘티백’. 종이컵에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낼 경우, 미세·나노플라스틱 발생원은 2개로 늘어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 연구진이 시판 티백을 분석한 결과, 폴리프로필렌 소재 티백에서는 차를 우릴 때 물 1㎖당 약 12억개의 미세·나노 크기 플라스틱 입자가 방출됐다.

연구진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배출된 입자를 사람의 장세포와 접촉시키는 실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일부 입자가 세포와 상호작용하고 흡수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티백.[게티이미지뱅크]
티백.[게티이미지뱅크]

이미 미세플라스틱은 음식과 물, 공기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사람에게 노출되고 있다. 사람의 혈액과 폐, 간, 뇌 등 신체 곳곳에서 플라스틱 입자가 발견되는 상황이다.

미세플라스틱이 우러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미세·나노플라스틱이 실제 인간의 질병을 얼마나, 어떤 수준의 노출에서 일으키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한 바닷가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 조각.[게티이미지뱅크]
한 바닷가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 조각.[게티이미지뱅크]

대표적으로 신경계 질환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다수 연구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세포 손상 및 독성을 유발하고,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된다. 혈액 속에 미세플라스틱이 유입될 경우에는 염증을 유발하거나, 혈액 응고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국제학술지 ‘란셋’ 또한 미세·나노플라스틱과 심혈관계 질환, 생식 건강, 면역 기능 등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초기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인체 축적을 주의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관련 보고서를 통해 “(미세플라스틱의) 급성 위해 증거는 없지만, 장기적인 인간 노출과 독성 영향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 조각.[게티이미지뱅크]
미세플라스틱 조각.[게티이미지뱅크]

종이컵 또한 주의가 필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 동안 종이컵에 뜨거운 액체를 담아 마신다고 가정했을 때, 미세플라스틱 섭취량은 하루 2mg에 달한다. 반복적이고 장기적으로 종이컵을 이용하는 습관이 반복될 경우, 축적량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를 이끈 엘비스 오코포 퀸즐랜드대 박사는 “식품과 접촉하는 제품은 환경적 지속가능성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 입자를 얼마나 방출하는지도 평가해야 한다”며 “제조업체 역시 뜨거운 액체와 접촉했을 때 플라스틱 입자가 덜 방출되는 컵 코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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