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승정원은 위계 질서와 근무 기강이 엄격한 대표적인 관서였다. 승지는 조선 시대 관료 체계 내의 핵심 관직이다 보니, 그들 사이에도 엄격한 위계가 있었다. 승지들은 회의나 연석(筵席)에서 서열에 따라 앉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가 앉는 위치는 동벽(東壁)이라 하고,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가 앉는 위치는 서벽(西壁)이라 한다. 승지는 도승지 중심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여 한번 도승지를 역임한 사람을 하위 승지로 강등시킬 수 없었고, 도승지 이외의 다섯 승지도 서열대로 승진시키거나 강등시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근무 기강 확립을 위한 대표적인 규정이 승정원에 배속된 신참 승지에게 적용하는 ‘주도(做度)’였다. 주도란 새로 관원에 임명된 사람이 해당 관사의 규정에 따라 연속해서 입직하는 것을 말한다. 승정원에서 엄하게 주도를 적용하는 이유는 아마도 임금의 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의 업무 특성상 신참에게 집중적인 업무 숙지 기간이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승정원의 업무 규정집인 《은대조례(銀臺條例)》에 따르면 승지 중 가장 말단인 동부승지의 경우 주도 기간은 13일이다. 주도 기간 내 궐문 내 금천교를 넘으면 새로 주도를 마쳐야 하는 규정까지 있었다. 금천교는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지나는 명당수인 금천(禁川) 위에 설치된 다리이다.
1698년(숙종24) 8월 30일에 동부승지 조태채(趙泰采)가 병으로 근무하러 나오지 않자 좌승지로 근무하고 있던 이사영(李思永)이 ‘동부승지는 주도를 마치기 전에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사진(仕進)하지 않을 수 없다.’는 규례를 들어 조태채를 패초할 것을 청한 일이 있다. 승정원 승지들이 주도를 채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통과의례였다.
강성득(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