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굵직굵직한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어 청소년들은 언제나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군부에 맞서다 총탄에 죽어간 청소년들이 있었고, 4ㆍ19 혁명의 도화선을 당긴 이들 역시 대구의 고등학생이었다.
정치ㆍ사회 변혁의 주역이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 청소년들은 어느 순간부터 대학입학을 지상과제로 여기게 됐고, 입시경쟁에서 뒤쳐지면 낙오자가 된다는 인식이 퍼져나가며 정치사회 문제에 수동적인 존재로 변했다.
다만 최근 들어 청소년들의 행동양식에 다시금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국정화 교과서, 세월호 등 자신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치ㆍ사회 문제와 관련해 SNS로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시작한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SNS의 발달로 청소년들의 의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불신에 찬 수동적인 존재였던 청소년들이 SNS 등의 발달로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불만만 가졌던 과거와 달리 SNS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른바 K세대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K세대를 정의한 허츠 런던대 명예교수는 K세대의 속성을 다양한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고, 정부와 기업 같은 기성체제를 불신하며,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봤다. 하지만 K세대가 부정적 세계관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켓니스 에버딘은 스노우 대통령이 지배하는 국가 ‘판엠’과 자신에게 대항하는 자들에 대항해 분연히 일어서며 혁명을 쟁취해낸다.
문제는 모바일과 SNS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우리 청소년들의 의견개진 기회가 많아졌음에도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에 대한 불만, 정치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기성세대들은 이들을 교육받아야 할 수동적 집단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운동을 해온 최훈민(21) 희망의우리학교 대표는 “선거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청소년 대상 정책들이 총선과 대선 공약에서 빠져 있다”며 “이를 경험한 청소년들이 자라나 성인이 됐을 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불신 해소가 숙제로 남은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 중에서는 청소년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나선 이들도 없지는 않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인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은 “정치에 대한 청소년의 불신은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국민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청소년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데서 기인했다”며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권에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했다. 류 의원은 “관련 현안들에 대해 페이스북 등 SNS를 적극 활용해 청소년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이를 반영토록 하면서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치가 본인의 일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청소년들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거나, 이들의 유권자 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장하나 의원은 지난 2012년 선거권을 현행 19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경태 의원 역시 올해 아동ㆍ청소년이 교과과정을 통해 유권자 교육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선거관리위원회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