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생 돼지띠 연대기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응답하라 1988’(응팔)에 등장하는 동네 절친 덕선, 정환, 선우, 택, 동룡은 1971년생이다. 이들 쌍문동 5인방은 1988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해 만 44세가 됐다. 연예인으로 따지면 이영애, 고현정, 김남주, 지진희, 안재욱, 이서진, 송일국, 신동엽, 남희석, 유희열, 김연우, 김경호 등과 동갑이다.

이들이 태어난 1971년 돼지띠 해는 102만4773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역대 가장 많았다. 요즘 연간 신생아 수는 1971년의 절반(2014년 기준 43만명)도 안된다.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사진출처=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사람들이 많으니 이들은 어디가나 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자 수는 역대 최대여서 오전, 오후반을 운영해야만 했다. 한 반 학생 수는 기본적으로 60명이 넘었다. 대입 경쟁률도 사상 최고였다. 드라마 속 덕선이 대학을 포기했다고 선언하는 대목이나, 정봉이 7수를 해도 합격을 못하는 건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1960, 70년대 산업화 시대와 1980년대 말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누리게 된 풍요로움을 맛본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1990년대 초반은 1980년대 3저 호황의 끝자락에 있던 때다. 1970~80년대 경제개발기를 거쳐 첫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0년대 초중반은 연평균 7~9%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것도 이때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5인방 친구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5인방 친구들.

1971년생들은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90년대 초반, ‘오렌지족’ ‘신인류’ ‘신세대’ ‘X세대’ 등으로 불리며 풍족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세계화 열풍에 발맞춰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처음으로 떠난 것도 이때다.

이들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더 익숙했다. ‘워크맨’, ‘마이마이’ 등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이들의 첫 번째 개인 전자제품이었다. 삐삐, 핸드폰, 신용카드 등도 1990년대 이들이 가장 앞서 소비한 물품 목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릴 때 첫 내 집 마련 대상이 된 건 2000년대 초 처음 등장한 ‘브랜드 아파트’였다.

그렇다고 1971년생들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인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한창 일할 때인 2000년대 후반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후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는 대출을 통해 내 집 마련에 열을 올리던 이들에게 큰 시련이 됐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들어선 이들은 ‘삼팔선’(38세가 퇴직을 하는 마지노선), ‘사오정’(45세 정년) 등의 유행어를 체감하며 살고 있다. 기업에서 이젠 차장, 부장급으로 일하며 사회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지만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누구보다도 열심히 인생 ‘이모작’(퇴직후 얻는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는 세대도 이들이다. 부동산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각종 창업강좌 등 자기계발에 치열하다.

그런데 돈이 잘 모아지지 않는다.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늘면서 하루하루 살기도 빠듯하다.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놓기도 했지만 집값 하락 전망에 자꾸 불안하다.

이들이 노인이 되는 20~30년 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상 최대 신생아 수는 사상 가장 많은 노인 세대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세대와 비교해 절반 수준인 연간 40만~50만명 수준의 젊은이들에 의지해 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자꾸 불안한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부동산 재테크와 창업 강좌를 기웃거린다. 쌍문동 5인방은 지금 하루하루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