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중심에 교양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예능이 선 지는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존재감은 방송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교양 프로그램이 해오던 사회적 실험이나 관찰은 예능과 만나 이른바 관찰 카메라,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최근 종영된 ‘짝’ 같은 프로그램은 교양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예능화된 경우이고 ‘정글의 법칙’은 교양팀과 예능팀이 합쳐져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슈퍼맨이 돌아왔다’ ‘나 혼자 산다’ ‘오 마이 베이비’ ‘백년손님-자기야’ ‘심장이 뛴다’ 등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본래는 교양에서 했던 소재나 방식을 예능의 문법으로 껴안아 제작된 것들이다. 이제 예능은 ‘글로벌 홈스테이 집으로’처럼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과의 공감과 교류를 다루는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

예능의 확장은 드라마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도 열풍을 만들어낸 ‘별에서 온 그대’를 보면 그 안에 꽤 ‘개그콘서트’류의 코미디가 엿보이는 걸 알 수 있다. 극중 여주인공인 전지현이 “하지마~” 하고 외치는 장면은 개그우먼 오나미의 유행어를 패러디했다. 이런 코미디 코드들이 능수능란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의 박지은 작가가 한때 예능 작가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능의 드라마 분야로의 확장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을 쓴 이우정 작가는 ‘1박2일’부터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같은 히트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예능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1박2일’의 나영석 PD는 대표적이다. 예능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회가 교양의 시대에서 재미, 놀이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경쟁력인 사회다. 호이징가가 말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의 출현이다.

하지만 예능의 위상이 ‘놀이의 시대’를 말해준다고 해도, 사회가 일보다 놀이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일 중독 사회’ 혹은 ‘피로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심한 경쟁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늘 1위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들은 일도 일이지만 가족들이나 지역사회 같은 타 집단들과의 교류가 끊겨버리는 문제를 겪는다.

일 때문에 시간이 없는 데다, 관계도 소원해진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건 다름 아닌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바빠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빠들은 ‘아빠 어디가’를 보며 위안을 받고, 변변한 여행 한 번 가기 힘든 이들은 ‘1박2일’을 보며 대리 충족을 받는다. 현실 여건이 맞지 않아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세상에 혼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다. 좀체 새로운 도전을 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이 ‘무한도전’을 보고, 제대로 된 교제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은 ‘짝’이나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이성의 심리를 읽어보려 애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은 그나마 이런 현대인들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예능에 푹 빠진 사회가 보여주는 일중독 사회의 디스토피아는 우리 사회의 어둠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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