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남 배려 없이 ‘임산부 배려석’ 앉고…커다란 백팩 매고 돌아다녀 한밤중 전조등 끄는 ‘스텔스車’ 예사…“한국 싫다” 떠나버리는 외국인들도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세쿠하라’, ‘에이하라’, ‘스메하라’….
타인에게 피해 주기를 꺼리는 문화가 형성된 일본에서는 각종 ‘민폐’를 나타내는 영어 표현을 간단하게 줄인 단어가 많다. ‘세쿠하라(セクハラ)’는 성희롱 혹은 성차별(sexual harassment)을, ‘에이하라(エイハラ)’는 직장에서 중년을 나이(age)로 차별하는 행태(age harassment)를, ‘스메하라(スメハラ)’는 냄새(smell)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smell harassment)를 의미한다. ’민폐‘를 명확히 정의하는 이러한 말들이 역으로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공 에티켓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예로 든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멀었다’는 목소리가 크다. 선진사회의 질서와 시민의식을 지향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해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모양새라는 지적이다.
최근 서울 지하철은 지하철 차량 1대당 2석씩 임산부 배려석을 도입했다. 분홍색으로 벽, 시트, 바닥을 눈에 띄게 표시하고 임산부를 위해 좌석을 비워 두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은 물론 한산한 낮 시간대에도 건장한 남성이 배려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백팩 민폐’도 지하철에서 아직 기승이다. 만원 지하철에서 커다란 배낭을 맨 사람들이 주위를 살피지 않고 지나다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위 승객을 ‘퍽’ 치고 다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외에도 한밤 중 자동차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려 다른 차량에 위협을 주는 ‘스텔스기’가 된 차량도 있다. 도심 가로등과 건물 불빛에 밤에도 전조등 켜는 것을 잊는 운전자도 많지만, 일부 과적 차량 등은 번호판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불을 끄고 달리는 경우도 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쓰레기통에 분리수거 없이 폐기물을 버리거나, 다 마시지 않은 음료를 그대로 버리는 행위 등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러한 공공 에티켓 부재에 “한국이 싫다”며 한국을 떠나거나, 오지 않는 사람들도 적잖다. 일본인 M(26ㆍ여) 씨는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 한국 항공사에 일자리를 잡으려 한국에 입국했다가 곧 발걸음을 돌렸다. M씨는 “사람들이 줄 서지 않고 새치기하는 모습이나, 지하철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밀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서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단념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진사회 진입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질서를 지키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성장이 강조돼 오면서 공공성을 발전시킬만한 계기나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라며 “앞으로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가치가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