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잃어버린 30년’과 함께 한반도를 눈물 적셨던 이산가족 찾기 행사는 30년 전의 이야기가 돼 버렸다.
30년에 또다시 30여년의 세월이 더하는 동안 이산가족 찾기 관련 자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전쟁과 분단으로 떨어진 가족들은 여전히 만남은커녕 생사 확인조차 못하고 있다.
2010년 11월. 상봉장에서 만난 한 가족의 손길에서 끝까지 붙잡고 싶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가 느껴진다. [헤럴드경제 DB]
2014년 2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에서 헤어졌던 가족들의 맞잡은 손에서 만남의 기쁨과 그리움. 그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자 하는 절절함이 느껴진다. [사진=헤럴드경제 DB]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2박3일간 짧은 해후를 가졌던 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도 또 한번의 생이별을 피할 수 없다.
2015년 10월. 2차 상봉에서 우리 측 최고령자인 이석주(98·위)씨와 구상연(98·아래)씨가 65년전 헤어진 딸과 아들을 만났다. 이석주씨는 1950년 북한에 군인으로 끌려가던 중 탈출, 홀로 남으로 내려오면서 가족들과 헤어졌다. 이씨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직접 시장에 가 아들과 조카에게 줄 양복을 샀다. 넥타이부터 와이셔츠,양복 등 정장을 모두 갖춰 준비했다. 멍하니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에서 생이별의 한이 느껴진다. 1950년 추석 날 인민군 징집으로 자녀들과 헤어진 구상연씨는 “당시 4살이던 둘째 딸 선옥(68)이가 ‘아빠 갔다가 또 와, 아빠 또 와, 아빠 또 와∼’라며 외치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아직도 그 말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때 잘 다녀오라고 한 게 마지막이 됐다”고 말했다. 빨간 신발을 선물로 준비한 구씨는 “그때 헤어지면서 신발을 사다주려고 했는데 65년만에 약속을 지키게 됐다”며 기뻐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제는 모두 백발이 성성해진 남편과 아내가,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아들이, 형제와 자매가 “꼭 다시 만나”, “100세까지 살아 또 보자”며 약속에 약속을 반복한다. 하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것은 이들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