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용의 화식열전]기업이 어려우면 진짜 위기다

흔히들 주가 급락하거나, 환율과 금리가 폭등하면 위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요동은 ‘소란(turmoil)’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위기(crisis)’는 손에 잡히지 않는 금융시장의 혼란에만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가장 중요한 게 기업관련 지표다. 기업이 어려워야 진짜 위기다.

최근 2년간 미국 우량기업과 미국 재정증권 금리차(spread)가 벌어지고 있다. 2007~2008년 이후 2년 연속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7~1998년 아시아외환위기 때처럼 경제에 심각한 문제에 앞서 나타나던 현상이다.

동시에 비우량기업들의 부도율까지 오른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미국 메릴린치고수익채권(비우량기업채권) 인덱스는 1년전 6.3%에서 최근 7.83%까지 치솟았다. 수치가 높을수록 부도위험이 높다.

이밖에도 최근 미국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과 긴축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유럽에서 글랜코어 등의 유동성 위기, 폭스바겐의 대규모 리콜 위기 등이 나타난 것도 심상찮은 조짐이다.

중국에서는 또다른 모습으로 기업들의 위기가 드러나고 있다.

최근 주택을 속여 팔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라이즈선(RiseSun)은 5년전 회사채 발행금리가 5.3%였는데, 최근 최근 4.99%에 채권을 발행했다. 정책 금리인하와 지급준비율 하락 때문일 수도 있지만, 증시폭락과 부동산 가격부진 등 다른 자산시장 상황과는 반대다.

라이즈선이 지은 아파트 값도 최근 2~3년새 20%가까이 하락했다. 중국 부동산관련 기업들의 채권발행은 지난 해 연간 1380억 위안이었는데, 올 해는 벌써 2370억 위안에 달한다. 저금리를 이용해 빚을 빚으로 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떨까?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는(S&P)는 한국 기업들의 현주소를 분석한 두 가지 보고서를 냈다.

첫 번째는 저성장, 저수익성, 저생산성, 그리고 지배구조와 경영의 불투명성 등 4가지 위험요인에 짓눌리고 있다는 보고서다. 다음은 중국 경제 부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 가운데 자원부국을 제외하면 한국의 타격이 가장 크다는 내용이다. 이밖에도 우리 기업의 매출성장과 수익성, 시설투자 등이 일본과 중국 기업보다 못하다는 외국기관의 보고서도 수두룩하다.

이 정도면 내년 우리 기업의 경영실적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일 수 있고, 대규모 감원과 이에 따른 가계소득 악화 등이 예상된다. 닥쳐서야 당황하지 말고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