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재현 기자]국가정보원이 사면초가에 들어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위조 사건’과 관련해 중국의 공문서를 위조해 증거로 제출했다는 의혹이 나오는가 하면, 국정원과 검찰 측의 주요 참고인들이 나서 ‘진술이 조작돼 제출됐다’고 이의를 제기한 상황이다. 법원마저 국정원이 피의자의 여동생을 합동심문센터에 두고, 변호인의 접견을 막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국정원이 ‘믿을만한 정보원’이라 불렀던 조선족 김모(61) 씨는 국정원에 불리한 유서를 작성하고 자살을 기도한 상황이다. 모든 나침반이 ‘국정원’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성역’의 위치를 고수하던 국정원에 대한 사상 초유의 강제수사가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정원은 그간 공무상 비밀은 소속기관장의 허가를 얻어야 압수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111조와 “검찰 등 수사기관은 국가정보원 직원을 수사할 경우, 이를 사전에 혹은 동시에 국정원장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국가정보원직원법을 양대무기로 수사를 회피하는 ‘수사 성역’으로 군림해왔다.
▶간첩 증거 위조 의혹 잇따라=‘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불리던 이 사건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위조사건’으로 된 것은 지난 2월,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 3건은 위조된 것”이라는 회신을 유우성(34) 씨의 항소심 재판부에 보내면서 부터다. 검찰은 이에 대해 ‘위조의 뜻이 문서 자체가 다르다는 것인지, 적법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며 둘러댔지만 중국 측은 ‘위조라는 말은 말 그대로 문서가 위조됐다는 뜻’이라고 다시 밝혔다. 또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 센터에서도 문서의 도장등이 진본과 다르다는 감정 결과를 냈으며, 무엇보다 싼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이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검찰이 법정에 낸 출입경기록은 사실’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국정원 측에 가져다 준 조선족 김 씨가 검찰에서 “‘김사장’으로 불리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직원이 유씨 변호인 측 자료를 보여주며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해달라’고 해 중국에서 위조문서를 만들어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위조’문서라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됐다.
다른 문서들의 진위도 의심스럽다. 유 씨의 간첩 혐의의 주요 증거인 검찰 측의 ‘출입경기록’ 역시 유 씨 변호인 측이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국에서 발급받은 ‘출입경기록’과 내용이 다르다. 또 검찰은 검찰 측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사실확인서’도 국정원을 통해 입수해 법정에 제출했지만 두개의 문서 역시 주한 중국대사관측이 ‘위조’라고 단정 지은 상황이다.
▶자술서 명의자 ‘내가 한 적 없는 말이 자술서에 들어있다’=검찰 측 공문서와 유 씨 변호인 측 공문서의 내용이 상충돼 ‘조작 논란’이 일자 검찰은 중국동포이자 중국 지린성의 모 변방검사참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임모(49) 씨의 자술서를 국정원으로부터 제출받아 증거와 참고자료로 법정에 냈다. 그러나 이 자술서 역시 위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씨는 지난 7일 국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자술서에 내가 말하지 않은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유 씨를 북한에서 봤다는 서 씨 진술서 역시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탈북자인 서 씨 역시 진술서를 통해 ‘지난 2007년 회령시에서 유씨가 위덕만이라는 친구와 함께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유 씨는 이에 대해 “위덕만은 내 친구가 맞다”고 했지만 “서 씨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씨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을 알아봤다는 말이 된다.
문제는 서 씨가 유 씨와 함께 목격했다던 위 씨가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 산둥성 엔타이시에서 식당일을 하느라고 북한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 씨의 진술서는 법원에 제출되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국정원 외에 서 씨가 누구인지, 그의 존재를 명확히 알고 있는 곳이 없어 교차검정도 어렵다.
▶법원 ‘국정원의 변호인접견 차단 위법’=게다가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간첩 사건’과 관련해 유우성 씨의 여동생을 조사하던 중 변호인 접견과 서신 전달을 막은 것은 위법했다는 법원 결정까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 단독 양석용 판사와 형사32 단독 송영복 판사는 법무법인 예율과 상록 등이 국정원이 운영하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유 씨의 동생 유가려 씨에 대한 접견권 제한에 대해 제기한 준항고 사건 5건에 대해 모두 인용결정을 내렸다.
법무법인 예율 등은 국정원이 서울시 간첩 사건 수사를 진행하던 지난해 2월 유씨 부친 등의 의뢰를 받고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유가려 씨에 대한 접견을 신청했지만, 국정원이 ‘유가려 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접견교통권 대상이 아니다’라며 이를 불허하자 준항고를 제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국정원이 당시 작성한 유가려 씨의 진술 조서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유가려 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국정원이 유가려 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 및 서신전달을 불허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피의자로 입건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으로 피의자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접견교통권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법원은 이어 “유가려 씨는 장기간 외부와 전혀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독방에서 조사를 받으며 국정원으로부터 오빠가 처벌받고 나오면 함께 한국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심리적 불안과 중압감 속에서 친오빠를 위해 계속 조사에 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madpen@heraldcorp.com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의혹 사건 일지 ▲2013.12.23=서울고법 형사7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피고인 유우성씨 변호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검찰 요청에 따라 중국 측에 양쪽에서 제출한 출입경 기록등에 대한 사실조회 요청
▲2014.1.7=민변, 검찰이 유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다며 국가보안법상 무고와 날조죄로 성명불상자를 경찰청에 고소.
▲2.14=중국대사관, 검찰이 유우성씨 사건 재판부에 제출한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과 출입경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 정황설명서에 대한 답변서는 위조된 것이라는 내용의 사실조회 회신
▲2.16=유씨에 대한 공소유지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찰이 입수한 문건은 중국 기관이 정식으로 발급한 것이라며 위조 의혹 부인
▲2.18=검찰, 증거조작 의혹 관련해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 지휘 아래 서울중앙지검에 진상조사팀 구성.
윤병세 외교부 장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선양총영사관이 정식으로 발급받은 문서는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발급사실확인서 1건뿐이라고 언급
▲2.19=서울중앙지검 진상조사팀 본격 가동. 검찰이 확보한 자료 등에 대한 직·간접 조사 착수
▲2.20=진상팀, 증거위조 의혹 관련해 국가정보원에 입장 요청
▲2.22=진상팀, 조백상 선양 총영사 참고인 신분 소환조사
▲2.24=진상팀,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에 검찰과 변호인이 제출한 서류 8건에 대한 동일성 여부 감정 요청
▲2.25=국정원, 진상팀에 자체조사보고서 제출. 진상팀, 중국에 국제사법 공조절차 진행 위한 내부절차 착수
민주당 진상조사단, 선양영사관 방문 현지조사
▲2.26=진상팀, 국정원 보고서로 조사대상 특정
천주교인권위, 증거위조 의혹 관련 선양영사관 이인철 영사와 수사·재판에 참여한 검사 2명을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로 중앙지검에 고발
▲2.28=진상팀, 이인철 영사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
대검 DFC, 진상팀에 변호인과 검찰이 제출한 중국 싼허변방검사참 문서의 관인이 서로 다르다고 회신
서울고법, “진상 규명과 재판 별개” 3월 28일 오후 3시에 결심공판 하기로 결정
▲3.1=이인철 영사 21시간 조사받고 귀가, 조선족 출신 국정원 협조자가 위조 의혹 문건 입수에 관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진상팀, 조선족 협조자 김모씨 소환조사
▲3.3=진상팀, 법무부 통해 중국에 정식 형사사법공조 요청
▲3.5=서울중앙지검, 천주교 인권위 고발 사건 진상팀에 배당하고 수사 착수
조선족 협조자 김모씨 진상팀에서 3차 소환 조사받은 후 영등포 한 호텔에서 자살 기도
▲3.6=조선족 협조자 김모씨, 자살 당시 호텔 벽에 ‘국정원, 국조원’이라는 혈서 쓰고 국정원 개혁 요구하는 내용 등의 유서 남긴 것으로 확인
▲3.7=검찰, 증거 위조 의혹 공식 수사로 전환.
▲3.9=검찰, 조선족 협력자 김씨에게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의 답변서 입수를 요구한 국정원 직원 특정
국정원 수사 적극 협조와 책임자 처벌등 담은 ‘대국민사과성명’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