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ㆍ김진원 기자] 판사와 변호사 간 특수관계 등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신청 또는 법원 직권으로 행하는 법관 기피제도가 대법원의 방관, 사회지도층 변호사들의 도덕적 해이, 법원에 밉보일 것을 우려한 변호사들의 법관기피신청 기피 등으로 사문화(死文化)되고 있다.

이 때문에 판사와 학맥, 인맥이 닿는 전관변호사를 구해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시도가 심화되고, 결국 사법정의가 멍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 형사소송법 상 법관기피제도가 ‘친족’과 ‘사건 직접 관련 여부’만 규정한 채 동창, 함께 근무한 전관 등에 대해 명시적 요건을 제시하지 않은 점도 불공정 인맥 재판을 야기하므로, 법 개정을 통해 법관 기피사유를 확대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한성 의원이 대법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법원에 신청된 법관에 대한 제척ㆍ회피ㆍ기피 신청 3546건 중 받아들여진 것은 3건에 불과해 인용(認容)률은 0.08%에 그쳤다. 민사는 3064건 중 1건, 형사는 582건 중 2건만 인용됐고, 2011~2013년, 올해 1~6월엔 단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17조는 법관이 ▷피해자일 때 ▷사건관계인의 친족, 대리인, 후견감독인, 증인, 감정인일 때 ▷대리인, 변호인, 보조인으로 된 때 ▷수사에 관여한 때 ▷사건에 관해 전심재판 또는 기초조사, 심리에 관여한 때에 해당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불공정재판의 원인으로서 가장 많이 횡행하고 있는 전관과 학맥,인맥을 고려한 변호인 선임관행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지 못한다.

황교안 총리가 변호사 시절 의뢰받은 한 사건의 주심 대법관이 고교 같은 반 동창인 것으로 드러나 인사청문회때 대법원과 황총리 모두 비판의 도마위에 올랐다.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선재성 전 부장판사가 몇 해전 자신이 법정관리하고 있는 기업에 고교 동창을 사건 대리인으로 소개한 혐의로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을 때 선씨의 서울대 후배이자 광주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재판장이 피고인인 선씨를 깎듯이 예우한 끝에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다른 법원이나, 갓 전입한 무연고 판사에게 맡겼어야 했다는 법원 안팎의 지적이 있었다.

법의 허점 때문에 서울중앙지법이 올해 8월1일부터 ‘연고관계 재판부 재배당‘ 정책을 시행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재판부 재배당할수 있도록 규정한 ‘연고관계’는 고교동문, ’대학 및 대학원 동기, 사법연수원 및 법학전문대학원 동기, 법원행정처ㆍ검찰청ㆍ변호사사무실 등에서 함께 근무한 사이, 기타 업무상 연고관계 있는 사이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김양 전 보훈처장의 전관 선임 꼼수를 이 제도를 통해 차단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최근 회원 12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재배당’ 제도가 전관예우 타파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77.7%. ’재배당 제도를 대법원에서도 실시하면 연고주의 타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은 73.3%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향후 이 제도가 전국 지법, 고법으로 확대 시행되기를 대다수 법조인들이 희망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지법, 고법, 대법원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각급 법원이 불공정재판이 예상될 경우 직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서울중앙지법 같은 제도를 운영할 뜻도, 법 개정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한성 의원은 “당사자가 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의문을 품고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 법원이 매우 인색하다”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국민의 호소와 요청에 귀 기울여 억울한 재판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 중견 변호사는 “부장판사가 학맥 또는 인맥이 닿는 피고인측 변호사에게 대놓고 조언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법원이 받아주지 않고, 행여 법원에 밉보이거나 법조계에서 매장당할까봐 기피신청을 기피한다”고 토로했다.

‘인용률 저조→법관기피신청 기피→인맥재판 지속’이라는 악순환을 하루속히 제거하기 위해 법 개정 또는 대법원 규정 신설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 특정 고교, 특정 대학 출신 법조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학맥을 이유로 일률적으로 제동을 걸면 변호사 직업선택의 자유 등과 관련해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심지어 고의적으로 학맥을 고려한 선임을 해서 깐깐한 재판부를 바꾸는 역기능도 예상된다”면서 “서울중앙지법의 혁신적 제도를 확대하기 보다는 시행초기인 만큼 효과를 추후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