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신용이 넘쳐난다. 우리나라를 ‘신용 공화국’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보유비율은 89%로, 원조 ‘신용 공화국’ 미국(67%)을 능가한다. 가계신용규모는 1100조원 훌쩍 뛰어넘어섰다. 가구당 평균 부채가 6000만원 이상이란다. 신용을 바탕으로 한 대출의 순기능을 무시할 순 없다. 풍부한 신용 덕에 자녀 대학교육, 전자제품ㆍ차량 구입 등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다. 그뿐인가? 주택담보대출 덕택에 자기집 소유 비율이 현재는 70%에 육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용사회가 만들어낸 대출 붐은 우리나라의 낙관주의를 넘쳐나게 하고 있다. 대다수가 “오늘 빚을 져도 내일 갚을 수 있다. 내일의 수입이 오늘보다 더 높을 테니까”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출 붐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 ‘Buy Now, Pay Later’라는 저서로 유명한 경제학자 마사 올니(Martha Olney)에 따르면, 오늘날의 신용문화는 1920년대부터 각종 제품을 할부 구입하면서 태동했다고 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빚지고 물건사기는 무책임한 행위’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지만, 1920년대 들어서는 ‘신용구매를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무책임하고 덜떨어진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신용은 거대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958년에는 뱅크 오브 어메리카(Bank of America)가 신용카드를 최초로 도입했고, 1976년에는 비자(Visa)라는 새 이름으로 시장에서 맹위를 떨친다. 신용사회 도래 이후 전세계 기업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와 연결된 각종 혜택을 비롯해 장기 할부 프로그램, 포인트적립, 마일리지, 현금 리워드 등 방법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를 60개월 무이자 할부로 준다고 한다. 심지어 반값만 받고 나머지 금액은 타던 차로 몇년 뒤에 돌려받겠다고 한다. 참으로 신용이 넘치는 사회다. 이같은 신용은 또한 빚을 갚거나 아니면 추가로 돈을 꿔야 하는 우리들에게 근면과 책임의식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결정적 수단이 되기도 했다. ‘지금 사고 내일 갚으면 된다’는 낙관주의의 시작이 더많은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수년간 박스권에 갇혔던 국내 증시가 올해들어 꿈틀거리면서 빚내서 주식을 사는 규모가 8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 증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스탁론 잔고 역시 이 상품이 생긴이래 처음 2조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식이나 채권 등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예탁증권담보대출 잔고도 10조원을 웃돈다. 이 가운데 10% 미만 정도만 주식을 산 것으로 가정해도 1조원 안팎에 달한다.
남의 돈으로 주식 산 규모가 줄잡아 10조원이 넘는다는 의미다. 증시가 더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앞뒤 가리지 않고 주식을 사모은 결과다.
위험성이 큰 만큼 금융당국은 항상 예의주시 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경고의 메시지를 주지 않고 있다. 결국 신용의 책임은 개인 스스로가 져야 한다. 빚을 권하는 사회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빚진 사회를 사는 우리 스스로의 절제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 보이는 이유다.
gre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