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하남현 기자] 1990년대 후반 서울 노량진에서 재수생활을 한 직장인 A 씨는 당시 ‘흑역사’를 함께했던 동기 몇몇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간혹 만나서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한다. A 씨는 “재수생 때 만난 친구들은 학교 동창생들과는 다른 애뜻함이 있다”고 말한다.
재수학원에서 동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길어야 10개월 가량에 불과하다. 2,3개월 가량 학원에 등록해서 길게 다닌다고 해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인 11월 초에는 상당수 학생들이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최장 3년간 같은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과 비교해 물리적으로 향유하는 시기는 비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재수학원 동문 모임의 끈끈함은 여느 학교 모임 못지않았다. 스무살 남짓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를 함께 공유하고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경계인으로 느껴야할 낯선 감정속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옆자리 친구를 보면 묘한 안도감과 친근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경우 같은 학원을 다니면서 같은 하숙집에 산다면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된다. 아침 저녁을 함께 하숙집에서 먹고 주말도 함께 보내며 ‘일탈 행위’도 함께 저지르는 말그대로 동고동락이다. 이 인연은 비록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더라도 오래도록 이어지기 마련이다.
단 학원의 동문 모임은 일부 고등학교의 동창회 모임처럼 대규모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종로학원이나 대성학원의 경우 한 학년에만 수강생수가 수천명에 달한다. 한 반만 해도 100명이 넘을 정도로 학생이 많다. 게다가 학원은 학교와 달리 매달마다 같은 반 학우가 변한다. 그래서 같은 해에 학원을 다녔다고 해도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재수를 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자랑도 아닌데 학교 동창회 모임처럼 플래카드 걸고 공개적으로 모이자고 하기에도 애매함이 있다.
A 씨는 “과거에는 대규모 학원 동문회가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모임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