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도경ㆍ이슬기 기자]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백혈병 문제를 위한 권고안이 나와 해결의 물꼬를 튼 가운데 재계에서는 독소조항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민간조정위원회(조정위)가 내놓은 권고안의 골자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 보상 등 절차를 진행할 공익법인을 설립하라는 것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권고안의 구체적인 각론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다.
▶반도체전문가 1명도 없는 이사진 경영권 침해 우려 = 재계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불거진 부분은 공익법인의 이사진 구성이다. 권고안에 따르면 이사진 구성은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한국산업보건학회, 한국안전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로부터 각 1명씩 전문가를 추천받도록 규정돼있다. 반도체업계는 산업을 감시하는 기구를 만들면서 반도체 전문가가 배제된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업계 종사자 혹은 반도체를 전공한 교수등을 포함하는 것이 전혀 고려가 안됐다”고 말했다.
재계는 옴부즈만 운영시 경영 간섭 논란도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권고안에 따르면 공익법인 이사회가 추천한 옴부즈만 3명은 삼성전자 사업장의 주요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고, 필요시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사실상 경영권 침해와 기술 유출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상질병 범위, 산재보험 초월 여부도 뜨거운 감자=조정위가 이번 권고안에서 제시한 12개의 보상 대상 질환도 논란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당초 삼성전자는 백혈병을 포함한 혈액암과 뇌종양ㆍ유방암 등 총 3개군 7종의 질환에 대한 보상을 제안했지만, 조정위는 이 범위를 12개군 29종까지 확대하고 “산업재해 급여 수준의 보상금을 보상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뜯어보면 개별질환은 7가지에 불과하다. 나머지 5가지는 포괄적인 질병군에 해당한다. 5개 질병군은 다시 총 24개의 질병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안에는 두경부암 등 여러 질병이 포함된다. 이 중 희귀질환ㆍ희귀암은 산업재해로 인정된 바가 없고 반도체 산업과의 인과관계도 거의 밝혀지지 않은 형편이다.
업계 일각에서 “산재는 인과관계가 확실한 경우에만 급여를 지급하며 사업자는 보험료만 부담하는 구조인데,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사업자가 직접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현행 제도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희귀암에는 두경부암이 포함됐는데, ‘신체 어디까지를 두경부로 봐야 하는가’는 의료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난제다. 두경부는 뇌 아래부터 가슴 윗부분까지를 통칭하는 말로 사실상 수많은 암을 포함할 수 있다. 즉 해당업체가 보상해야 할 질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퇴직후 잠복기를 최장 14년까지 보장하라’는 조항에 대해서도 70세 이후 암 발병률의 자연 상승을 감안하지 않은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지난 2013년 12월 첫 본교섭을 시작한 후, 오랜기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각각 1ㆍ2차 조정회의를 진행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 등으로 구성된 조정위는 여기서 나온 각 주체 의견을 바탕으로 지난 23일 권고안을 발표했고, 내달 3일까지 각 측으로부터 이의제기를 받을 예정이다. 당사자들의 이의제기가 없으면 조정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인정된다.
권도경ㆍ이슬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