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우크라이나 과도정부와 러시아 간에 갈등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변동 요소’(swing factor)라는 지적이 나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에 큰 영향을 미치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흔들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압박 공세 속에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는 조기대선전에 본격 돌입했다. 크라이나의 새 집권 세력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친러-반러 갈등, 우크라이나를 흔드는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친러-반러 갈등상황은 3개월 간의 시위와 폭력사태를 몰고 왔고, 끝내 내전 위협에까지 직면하게 됐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흔드는 ‘변동 요소’라고 칭하고 있다고 25일(현지시간) CNBC방송이 보도했다.
정치 전문 자문회사 JLT스페셜티의 엘리자베스 스티븐스는 “거의 밑바닥에 있던 우크라이나 경제가 지난 이틀 동안 아예 바닥까지 내려앉았고 지금은 정말 원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변동 요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인접국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개입을 하게 된다면 유럽(서방)이 취한 위치보다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정치적인 위치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과도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150억달러 차관 원조를 약속했으나 이후 정국을 안정시키라며 압박했고 친러 성향의 정권이 교체된 이후 지원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혼란스런 정국 만큼 우크라이나 경제도 침체의 연속이다. 우크라이나 흐리브니아화는 이 날 달러당 통화가치가 6% 하락하며 9.7흐리브니아를 기록, 2008년 12월(9.55흐리브니아/달러) 이래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 에너지를 무기로=우크라이나는 에너지 의존도에 있어서 러시아에 자유롭지 못하다. 러시아는 유럽 전체 천연가스 공급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국영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을 이용해, 자원을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할 가능성도 높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가스프롬이 무대에 나설 때?’란 제목의 기사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차관지원 패키지를 통해 천연가스를 싼 값에 들여올 수 있었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오는 4월, 가스프롬과 우크라이나 에너지회사인 나프토가스가 협상에 실패하면 1000㎥당 268.5달러 하던 가격이 390~410달러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에도 세 차례나 가스 공급을 중단한 사례가 있어 최악의 경우 에너지 공급 중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서 분열 조장, 침공 가능성까지…제 2의 크림전쟁(?)=러시아는 친러성향이 강한 지역을 앞세워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을 더욱 조장하며 분리주의를 무기로 삼고 있다. 크림반도 일부 지역이 과도정부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하원 독립국가연합(CIS) 문제 담당 위원회 위원장 레이니트 슬루츠키 등 의회 대표단이 크림반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합병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고 일부 지역 분리 독립도 최악의 시나리오에 포함된 상태다.
BBC나 주요 외신들도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대통령 권한대행의 “분리주의가 가장 심각한 위협”이란 경고성 발언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분열 양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JLT의 스티븐스는 CNBC에 “선거(대선)로 풀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라며 “국가분리를 원한다고 말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나온지 불과 하루 이틀 지났을 뿐이고 이들은 친러성향의 크림반도 일부 특정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일은 러시아가 크림반도 지역에 개입하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5일 우크라이나의 5월 조기대선은 시기상조라며 대선 계획은 지난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들이 서명한 정국위기 타개 협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이 협정을 통해 오는 9월까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을 실시하고 그 이후에 연말까지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안에 합의했었다며 “5월 조기 대선에 관한 의회 결정은 합의 파기”라고 비판했다.
라브로프는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할 생각이 없으며 서방국도 같은 태도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는 러시아가 지난해 말 약속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150억달러 차관 지원 문제와 관련, 향후 우크라이나 상황을 봐가며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하루 전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차관 2차분 20억달러의 전달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우크라 조기 대선 선거운동 시작=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조기 대선 선거 운동이 시작됐다고 공식발표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 의회는 앞서 5월25일을 조기 대선일로 선포한 바 있다.
대선 후보로는 야누코비치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어온 기존 야권 지도자들이 대부분 거론되고 있다.
전 헤비급 권투 챔피언 출신으로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수인 비탈리 클리치코는 오래전부터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최대 야당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아르세니 야체뉵과 또다른 야당인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올렉 탸그니복 등도 출마가 유력하다.
지난 22일 의회 결의로 출소한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의 출마설도 돌았으나 티모셴코 측은 그녀가 대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야누코비치는 원하더라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선거법은 조기 사퇴한 대통령의 대선 재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 22일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직을 스스로 포기했다면서 그의 퇴진을 결의했다.
▶의회, 야누코비치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추진 = 우크라이나 의회는 이날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측근들을 헤이그 ICC에 제소하는 결의안 심의에 착수했다.
의원들은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전 정권의 고위 공직자들이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지난 2월22일까지 벌어진 우크라이나 야권의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를 무력 진압해 대규모 인명 피해를 야기한 책임이 있다며 이들을 대량 학살 혐의로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누코비치 정권과 싸워온 주요 야당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올렉 탸그니복은이날 의회 회의에서 야누코비치 ICC 제소를 위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회는 또 이날 최근 유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목록을 발표하면서 국경 수비대에 이들의 출국을 허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옛 소련권 국가들 긴장 =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 사태에 충격을 받은 이웃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는 반정부 시위 사태에 대비해 관련 법률을 강화하는 등 긴장된 모습이다.
벨라루스 의회는 24일 반정부 시위 사태 등으로 인한 비상사태 선포시 진압에 나서는 경찰과 군인의 발포에 대해 형사 책임을 면제해 주는 ‘비상사태법’ 개정안의검토에 본격 착수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란 평을 받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앞서 23일 혁명이 빵 문제를 해결해 주지못한다며 우크라이나 야권을 비판한 바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일부 러시아 극우 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카자흐를 포함한 옛 소련 국가들이 러시아와 재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데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