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주점 · 당구장에서 PC방 · 클럽까지…

몸은 수험생 마음은 대학생인 고4 유혹의 5敵 물리치는 게 입시성공 비결

온라인검색·게임·스마트폰 등 요즘엔 ‘웹과의 전쟁’ 벌이는 중 학생과 성인의 경계에 있는 재수생은 입시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다. 더욱 높은 대입 성적을 위해 1년 더 공부를 하는 재수생 규모가 크다 보니 재수생을 대상으로 한 재수종합반의 역사도 반백년을 넘어간다.

베이비붐 1세대(1943~1960년생)는 치열한 경쟁만큼이나 재수종합반의 역사의 문을 연 세대이기도 하다. 당시엔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이 입시생의 표어와도 같았다. 고교 4학년이라 불리는 재수생의 성공적 수험생활을 위해선 잠이란 적(敵)을 일단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적은 더 있다. 재수생을 위한 입시학원이 1970년 전후로 들어서면서 근처 선술집과 당구장, 고고장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이성친구, 이른바 이와 같은 ‘재수오적’을 물리치는 것이 입시 성공의 비결로 꼽히게 됐다.

1970년대 들어 서울 종로에 재수생을 위한 입시학원이 속속 들어서면서 세종로사거리에서 종묘까지 이어졌던 좁은 골목 피맛골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도 포용하던 곳이었다. 80년대 초 명동성당에서 중앙극장으로 이어지던 학사주점에도 재수생들은 들락거렸다. 당구장 한쪽에서 먹는 자장면도 성인도, 학생도 아닌 경계를 넘나드는 묘한 해방감을 안겨줬다.

90년대 나이트클럽, 2000년대 PC방과 클럽 등 몸은 수험생이나 마음만은 대학생인 재수생들에겐 끊임없는 유혹의 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군사정권 속에서 민주화 바람이 한창이던 1980년대. 대학가 학사주점은 재수생들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명소였다. 파전에 동동주, 김치찌개 국물이 전부였지만 그곳에서 재수생들은 대학생 흉내에 푹 빠졌다. 그들은 친구들을 따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주역이 되고 싶어했다. 주점 안 대학생들이 연이어 민중가요를 불러대면 재수생도 그 분위기에 동참했다.

하지만 재수생들의 대화 주제는 여전히 ‘대입’. 1988년 재수생활을 경험한 C(45) 씨는 “민중가요를 따라 부르지 못해도 주점에서 대학생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면서 “집에 들어갈 때 음주를 들키지 않으려고 껌을 씹고, 물을 마시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종합반과 단과반이 밀집한 서울역과 노량진역 신설동역 등의 학원 주변 포장마차에선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분위기였다.

이태원과 강남역 나이트클럽이 젊은 층의 인기를 끌었던 1990년대 초반. 이어 신촌과 홍대, 건대입구에 생긴 록카페(술 마시는 자리에서 춤출 수 있는 곳)는 재수생들을 유혹하기에 제격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장충동 S호텔, 이태원 C호텔, 강남 EㆍN호텔 등 호텔 나이트클럽은 재수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2000년대 전후로 홍대와 강남역 주변에 들어선 클럽은 과거 고고장(고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곳)부터 디스코텍, 록카페, 나이트클럽에서 진화된 모습의 하나였다. 1992년 재수생이었던 H(41) 씨는 “나이가 같은데도 대학생은 클럽에 들어가고, 재수생은 퇴짜를 맞았다”면서 “재수생들이 물을 흐릴 것을 걱정했는지…”라면서 추억 속에 빠졌다. 사실 대학 1학년생은 만 20세가 안 된 탓에 성년이 아니다. 하지만 클럽 웨이터들은 대학생들에게만은 관대했다.

고교생은 당구장에 갈 수 없었던 시절, 재수생들에게 학원 인근 당구장은 해방구였다. 몰래 피우던 담배도 서슴지 않았다. 당구장 주인아저씨는 형이었고, 삼촌이었다. 노량진에서 1995년 재수와 이듬해 삼수를 했던 S(38) 씨는 “학원 들어갈 때 30(당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점수)이었는데, 삼수하고 하니 250까지 늘었다”고 했다.

인터넷이 보편화한 2000년대. 재수생들은 PC방과 전쟁을 벌였다. 한 번 빠지면 밤새우기는 기본. 2000년에 재수한 K(33) 씨는 “학원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PC방에서 몇시간씩 게임을 즐겼다”면서 “하지만 부모님 생각에 후회하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이성친구와의 교제는 시대를 불문하고 재수생에겐 금기 사항이다. 2001학번인 K 씨는 “재수종합반에서 함께 수업을 들어도 이른바 수업 후 자율학습은 남학생은 3층, 여학생은 4층 이런 식으로 아예 층을 달리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수업은 한 교실에서 듣는데 자율학습만 갈라놓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도 최대한 학원 측에서 남녀를 붙여놓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의 재수 풍경은 어떨까.

‘인강(인터넷강의)’이 익숙한 요즘 ‘고 4’는 바야흐로 ‘웹(web)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재미있는 정보가 넘쳐나는 온라인 검색과 게임, 심지어 스마트폰까지 디지털기기가 가져다주는 각종 놀거리로부터 얼마나 초연해지는가가 수험생활의 성공을 가늠하게 됐다.

성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