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일본의 근대화 산업혁명시설이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한일 양국은 양국이 포함된 21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의 표대결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지난한 협상과 총성 없는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자국을 넘어 아시아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된 산업시설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는 점에서, 한국은 그냥 넘어갈 뻔했던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문제를 국제사회에서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각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 관련 발표문에서 “과거 1940년대 조선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했던 일이 있었으며 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정보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노역했다는 것을 사실상 최초로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으로 언급한 것”이라면서 “한일 양자 협의를 넘어 세계유산위원회 공시 발표문에 일부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일본의 발표문 내용은 한국의 외교력을 총동원한 전방위 외교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09년 1월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인 규슈(九州)ㆍ야마구치(山口) 지역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하고 5년여 동안 등재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특히 지난 3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등재를 권고하면서 사실상 끝난 게임으로 여겨졌다.
지난 10년 동안 ICOMOS가 등재를 권고해서 세계유산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 영토문제가 개입된 단 1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를 상대로 전방위적 외교전을 펼쳤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이 “국가 간 불필요한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달 17일에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에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도 세계유산위원회 개막에 앞서 독일을 찾아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지지를 요청하는가하면 위원국을 상대로 서한을 발송하는 등 팔걷고 나섰다.
일본을 대상으로 설득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일 외교장관회담과 양자협의 등을 통해 조선인 강제징용의 내용이 포함돼야하는 정당성을 설파했다.
이 같은 노력은 미국 하원의원들이 마리아 뵈머 세계유산위원회 의장에게 “일본의 등재 신청은 전쟁포로의 역사를 완전히 생략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서한을 보내고, 세계 각국의 주요언론이 한국측 입장을 지지하는 등 분위기 반전으로 이어졌다.
다만 당초 총 23개 시설 가운데 조선인 강제징용이 이뤄졌던 7개 시설을 세계유산 등재에서 제외시킨다는 목표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7개 시설을 빼자고 했으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위원국들을 설득할 때 한국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반영해야한다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여론의 우위를 확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나름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다. 중국과 치열한 동북아패권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김이 빠지긴 했지만 자국의 근대화 산업시설이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산업혁명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을 공인받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또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을 기리는 조치와 관련해 2017년까지 세계유산센터에 경과보고서를 제출하고, 2018년 열릴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경과보고서를 검토토록 돼있지만 강제성은 약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큰 부담은 아니라는 평가다.
외교소식통은 “조선인 강제징용만 없었다면 일본이 이번에 추천한 산업시설은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라며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요청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과거사문제에 있어서 독일과 마찬가지로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는 이미지 제고효과도 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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