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도시, 베니스를 가다

이탈리아의 수상도시 베니스(Venizia)는 살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일단 지형적으로는 6세기말 석호(潟湖ㆍLagoon)의 사주(砂洲)가 있던 곳에 시가지가 세워졌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다. 최근에는 석호의 오염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들이 빼곡한 베니스는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다. 연중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이지만, 물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보니 대체적으로 습하다.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가 저녁이 돼도 축축할 정도라고. 거주민들에게 성능 좋은 제습기는 필수 가전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 센’ 베니스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흔한 ‘뭍것’들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의 자부심 때문이다. 바로 1500년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해 온 문화예술이다.

▶미술에 빠지다=베니스는 미술의 도시다. 5월의 베니스에서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린다. 전세계 미술 관계자들과 함께, 미술품에 큰 돈을 쓰는 컬렉터들이 미술계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기 위해 이 곳으로 모여든다. 5월초에 개막해 11월말까지 계속되니, 반년 가까이 베니스를 먹여 살리는 대표적인 문화예술 관광상품인 셈이다.

굳이 비엔날레가 아니더라도 미술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을 꼽자면 아카데미아미술관(Gallerie de l’Academia)과 페기구겐하임컬렉션(Peggy Guggenheim Collection)이다.

아카데미아는 14~18세기 베네치아 화파 거장들의 작품 800여점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750년 미술학교로 세워진 이 건물에 수도원, 교회 등에서 가져온 회화 소장품들을 옮겨 오면서 미술관으로 재개관했다. 대부분 카톨릭 성경과 관련된 작품들이다. 전시장을 대충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거꾸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입장료는 15유로(약 1만8000원).

전시장은 ‘폴립티크(Polyptychㆍ병풍처럼 몇개의 널빤지를 연결해서 만든 장식품)’ 작품들부터 시작한다. 로렌조 베네치아노의 폴립티크 작품 ‘리온과 수태고지’가 있는 제 1전시실을 거쳐 세바스티아노 루치아니, 베네데토 디아나, 주세페 자이스, 안토니오 카날레토 등 시대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인 지오반니 벨리니의 그 유명한 ‘성녀 사이의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포함, ‘천사와 수태고지’, ‘피에타’ 등도 이 곳에 있다. 안토니오 비바리니 등 다양한 버전의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비교해 보는 것이 큰 재미다. 이 밖에도 비토레 카르파초의 ‘성 우르술라의 전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피에타’, ‘세레자 요한’, 틴토레토의 ‘성모승천’ 등이 미술관 주요 작품이다.

아카데미아가 베니스 미술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페기구겐하임컬렉션은 가장 핫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의 소장품을 모아놓은 곳으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분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먼저 전시장 입구 로비를 포함, 곳곳에서 눈에 띄는 것이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의 키네틱 조각, 모빌 작품들이다. 비싼 작품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여기저기 걸려 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의 ‘Mural(1943)’, ‘Alchemy(1947)’, ‘The moon Woman(1942)’ 등도 구겐하임의 주요 소장품이다. 현재 ‘잭슨 폴락 기획전(4월 23일~11월 15일)’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 벽면마다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 후안 미로, 윌렘 드 쿠닝, 샘 프란시스 등 책으로만 보아 왔던 초현실주의와 추상주의 화파 거장들의 작품이 빼곡하다. 입장료는 역시 15유로.

이 밖에 베니스 명품거리에 자리잡은 상업갤러리 ‘콘티니(Contini Galleria D‘arte)’도 빼놓지 말아야 할 명소다. 로버트 인디애나, 페르난도 보테로의 대형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음악에 홀리다…낭만에 취하다=베니스는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가 베니스에서 태어났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여생을 마감한 곳도 베니스다.

베니스 음악여행의 대표적인 곳은 오페라극장 ‘라 페니체(La Fenice)’, ‘음악박물관(Museo della Musica Antonio Vivaldi e il suo tempo)’, 그리고 비발디 연주가 매일밤 펼쳐지는 ‘산비달 성당(Cheisa san Vidal)’이다.

라 페니체는 1853년 3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초연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올해에는 라트라비아타와 함께 푸치니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 벨리니의 ‘노르마(Norma)’ 등이 요일을 달리하며 공연된다.

최근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라트라비아타는 ‘리메이크 버전’이다.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등장해 오리지널 넘버를 부르는 형식이다. 클래식 버전을 기대했다면 적잖이 실망할수도. 그러나 극장이 주는 아우라와 배우들의 연기에 금새 압도된다.

음악박물관은 오래된 현악기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먼저 17~18세기에 만들어진 만들어진 콘트라베이스 3대가 전시장 한 가운데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가장 오래된 앤티크 악기 중 하나인 체트라(Cetraㆍ고대 그리스의 리라)와 카톨릭 성가 악보 등도 유리장 속에 진열돼 있다. 무료로 공개된 전시공간에는 비발디 연주가 울려 퍼진다.

비발디 음악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산비달 성당을 가면 된다. 베니스에서 비발디 연주로 가장 유명한 ‘인터프레티 베네찌아니(Interpreti Veneziani)’가 무대에 오른다. 가격은 27유로. 천정 높은 성당에서 비발디 협주곡이 매일밤 연주된다. 객석 대부분을 채우는 건 관광객들이다. 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가 악장마다 반복되는데, 악장이 바뀔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진행요원이 웃으며 조용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다.

베니스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미술에 빠지고 음악에 홀릴 수 있다. 특히 산마르코(San Marco) 광장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다. 산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화려한 비잔틴 양식의 산마르코 대성당과 두칼레 궁전은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건축물로, 하루종일 관람객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광장의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3곳의 커피하우스다. 이 중 1720년에 세워진 ‘플로리안(Florian)’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플로리안에서 커피를 마셔야 베니스 여행이 완성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삼중주가 낮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이어지며 산마르코 광장을 채운다. 한쪽 카페에서 라벨의 ‘볼레로’ 연주가 끝나면 다른 쪽 카페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Con te partiro’를 연주하는 식이다. 밤이 되면 카페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다. 술이 없어도 취한다. 낭만 가득한 산마르코 광장이라면.

글ㆍ사진(베니스)=김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