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공무원연금 개혁 통과 이후 국회선진화법 후폭풍이 거셉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요지입니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법 통과가 안 된다는 불만이죠. 2012년 탄생한 국회 선진화법이 불과 3년 만에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에서 쇠톱, 쇠망치, 주먹질을 없애자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해외 토픽에도 오르내리는 한국 국회의 낯뜨거운 풍경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위기감이었죠. 지난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선진화법은 탄생합니다.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의 직권상정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특정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상임위에서부터 5분의 3 이상 동의 절차가 있어야만 합니다. 야당이 반대하면 사실상 법안 처리가 불가능해진 셈입니다.

그전에는 과반 의원 참석에 과반 의원이 찬성하면 법안 처리가 가능했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제1당이라면 법안 처리가 법적으로 가능했죠. 쇠망치가 공사판이 아닌 국회에서 등장하게 된 배경입니다. ‘날치기’는 ‘남의 물건을 잽싸게 채어 달아나는 짓’을 뜻합니다.

그런데 인터넷 국어사전에 보면 날치기에는 또 다른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의원 정족수 이상을 확보한 당에서 법안을 자기들끼리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일’. 날치기에 파생 설명이 붙을 정도입니다. 한국 국회는 그랬습니다.

공무원연금법이 난항 끝에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새벽 4시까지 줄다리기 협상 끝에 통과한 법입니다. 협상 과정에서 시행령 수정권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까지 더해졌습니다. 타결 이후, 국회 선진화법이 문제라는 목소리가 여당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야당이 반대하면 법 통과가 불가능하니,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는 불만이죠.

다시 이틀 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국회 선진화법이 없었다면, 그리 가정한다면 29일 새벽 국회는 어떤 풍경이 빚어졌을까요?

여야 대표가 어떡하든 다시 만나 문구를 수정하고 양보하고 요구하며 줄다리기를 벌였던 그 시간에,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새벽 4시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날치기 통과하려는 여당, 이를 막으려는 야당. 쇠망치와 몸싸움이 훨씬 수월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여당은 국익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을 것이며, 야당은 대한민국 국회는 죽었다고 울분을 토하며 비상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지역 방문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과거엔 꼭 하고 싶은데 야당이 반대하면 강행 통과했다. ‘날치기’라 하는데, ‘강행통과’”라고 말입니다. 날치기가 옳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여야 합의가 어렵다는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토론과 협의의 문화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남의 말을 듣기보다 내 얘기만 하려 하는 한국 사회에서 올바른 토론문화는 참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법을 바꾸는 건 오히려 쉽습니다. 더 어렵고 고단한 과정은 사람을 인식을 문화를 바꾸는 일입니다. 선진화법을 손보는 건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수십년 동안 국회에 뿌리내린 몸싸움 문화를 바꾸는 것보다 말입니다.

선진화법이 문제라고 하지만, 정작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건 후진적인 국회의원의 토론문화가 아닐까요? 대화로 풀어내는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 해서 다시 몸싸움 국회로 회귀하는 게 과연 올바른 접근법일까요?

선진화법 자체가 완전무결할 순 없습니다. 아무리 토론하고 대화해도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는 문제도 있죠. 다만 선진화법 개정을 원하는 움직임이 좀 더 선진적인 토론문화를 위해서인지, 머리 아프고 힘든 토론문화를 배제하기 위해서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할 일입니다.

정치는 국익을 우선합니다. 하지만, 국익에서의 익(益)은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다시 이틀 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국회 선진화법이 없었다면, 그래서 새누리당이 강행처리했다면 어찌 됐을까요? 선진화법 개정을 원하는 목소리처럼 좀 더 국익에 도움이 되는 법안 처리가 가능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대신 국회의 민주주의는 쇠망치, 몸싸움으로 다시 회귀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 돼야 할 국회는 또다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됐겠죠. 국민이 생각하는 정치에 대한 회의는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가치, 토론과 협의의 정신 역시 국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