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정희(밀양) 기자] 보이지 않는 적, AI바이러스와의 전쟁이 한창인 밀양. 분무식 소독기와 집중 소독시설을 이중으로 통과한 후에야 겨우 도착한 경남 밀양시 초동면 덕산리 외송마을. 경남에서 최초로 고병원성 AI가 최종 확진된 토종닭 사육농가로 통하는 유일한 농로는 방역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AI확산은 막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그만큼 철저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농림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김용찬(37) 방역사는 벌써 일주일째 가족과 생이별을 감수한 채 AI 발생현장을 지키고 있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교차오염을 우려해 퇴근이나 교대도 없이 24시간 현장근무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고병원성 AI가 확진된 현장에는 어김없이 방역사가 파견돼 철저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농장 관계자들을 상대로 대면조사를 벌여 오염경로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 또 인근 저수지나 논, 밭에서 야생조류의 가검물을 확보해 역학조사팀으로 보낸다. 인근 야생조류의 감염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인근 논밭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샅샅히 뒤져서 모든 가검물의 채취를 완료했습니다. 농장 관계자와도 십여차례 면담 조사를 실시해 감염경로와 관계된 모든 정보를 기록해 본부에 보고했습니다”
하루 종일 조사활동을 펼쳤던 김 방역사는 조사를 위해 입었던 방역복과 비닐장갑을 벗고 새로운 방역복으로 갈아입었다. 벗어놓은 방역복과 장갑은 불에 태워 오염원 유출을 극도로 차단하는 모습이었다.
AI 발생현장을 중심으로 세워진 방역 초소는 모두 11곳, 밀양시는 마을과 통하는 모든 도로에 이중삼중에 걸쳐 방역망을 가동하고 있었다. 공무원들과 경찰병력이 24시간 동원돼 마을을 오가는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장 근무에 나선 밀양시 문화관광과 김일국 담당관은 “차량 운전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순조롭게 소독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추운 날씨에 현장근무가 힘들긴 하지만, 피해 농가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름에 빠진 밀양=밀양에서는 지난달 31일 고병원성 AI가 확진된 후, 이틀간 인근 3㎞ 이내 8개 농가, 9만8000여마리의 닭과 오리가 예방적 살처분됐다. 이번 사태로 자식같이 키우던 닭을 모두 잃고 시름에 빠진 농민들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인근 무안면 연상리에 위치한 소규모 농장에서는 토종닭 5000여마리가 살처분 당했다. 농장주 박모(55)씨는 “설날 당일에도 정성스레 키운 닭을 분양하기로 약속한 곳이 있었다”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다”고 심정을 드러냈다. 박씨 농장은 당장 살처분 당한 닭들의 보상은 어느정도 받을 수 있겠지만, 사태가 진정되기까지 일손을 놓아야 하는 농가 입장에선 정말 어려운 상황임에 분명했다.
같은 연상리에 위치한 산란계 농장인 A축산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에 살처분 대상이 된 농가의 85%에 달하는 8만4000여마리의 산란용 암탉을 산채로 땅에 묻어야 했기 때문이다. A축산은 하루 4만여개의 달걀을 생산하는 업체로 5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덩락힌(베트남ㆍ34)씨는 “농장에서 일을 한지 6년이 넘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직원들 모두가 충격으로 일손을 놓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며 “우리 농장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피해가 큰 것 같다”고 하루빨리 AI가 진정되어 다시 일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농장대표 남모(58)씨는 그동안 밀양시에 장학금을 쾌척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최선을 다해왔다. 하지만 이번 일로 실망이 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번 상황으로 자칫 어렵게 쌓아놓은 납품처를 모두 잃게될까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ㆍ양산 등 접경지역 초긴장=밀양 AI 발생 여파로 산란계 집산지인 양산지역과 지난 3일 닭 300마리가 추가로 폐사한 부산 강서구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경남 양산의 축산종합방역소에는 하루종일 축산관계 차량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다. 대규모 산란계 집산지가 위치한 양산에서는 이곳에서 정밀 소독을 거쳐 필증을 소지한 차량만 양계 농가에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산 축산종합방역소 관계자는 “인근 밀양에서 AI가 발생해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며 “AI 유입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방역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곳 양산은 지난 2008년 AI가 발생해 닭과 오리 등 가금류 140만마리를 살처분해 120억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발생한 경험이 있다. 현재 양산에는 200여 농가에서 180만마리가 넘는 가금류를 사육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90곳은 방역에 취약한 소규모 농장이다. 양산시는 대규모 피해를 막기위해 소규모 농장의 가금류 1300마리를 수매 처리하기로 했다.
지난 1일 닭 200여마리가 집단 폐사해 AI 의심신고된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양계농가에서 또 다시 300마리가 추가로 폐사해 방역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불과 사흘만에 500마리가 집단폐사한만큼 방역당국도 오는 6일쯤 예상되는 정밀조사 결과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역당국은 이 농가에 초동방역팀을 투입하고 임시초소를 세워 가금류와 농장관계자의 이동을 통제하는 등 AI 대응 매뉴얼에 따라 조치했다. 경남에서는 강서구의 AI의심농가 반경 3km 내에 해당되는 김해지역 4농가, 닭 4000여마리를 수매처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