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취한 적이 결코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얻은 이득이 무엇이 됐든 간에 내 신념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홍콩의 대표적인 좌파 정치원로이자 칼럼리스트인 우캉민(吳康民) 전 인민대표대회 홍콩대표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지난달 27일자 이 편지는 우캉민이 칼럼 형식으로 최근 홍콩 밍바오(明報)를 통해 공개했다.
편지 형태라고 해도 현역을 은퇴한 전임 총리가 스스로 부정축재 의혹에 대해 결백을 호소한 경우는 신중국 성립 이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원자바오 일가의 부정축재 의혹은 지난 2012년 10월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NYT는 원 총리 일가가 원 전 총리 재임기간 약 27억달러(약 2조91060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축적했다고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사실무근이며 악의적인 보도”라고 반박했고, 원 전 총리도 자신에 대한 당 지도부의 조사를 요청하는 등 결백을 강력히 주장했다.
재임 중 ‘서민 총리’ 이미지가 강했던 원 전 총리는 역사에 자신이 부패인물로 기록되거나 언급되는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그래서 편지를 통해 명예회복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폭로로 인해 다시 한 번 체면이 구겨졌다. ICIJ는 중국 전ㆍ현직 최고지도자들의 친ㆍ인척들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역외탈세를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명단에는 원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과 사위 류춘향(劉春航)을 비롯해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주석의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위 우젠창(吳建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조카 후이스(胡翼時),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李小琳), 8대 원로인 왕전(王震)과 펑전(彭眞)의 자손들이 올라와 있다.
탈세를 도모한 정황이 드러난 인사들은 부모의 후광을 바탕으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이른바 ‘홍색(紅色)귀족’들이다.
이들이 해외로 유출한 자산은 최소 1조달러에서 최대 4조달러(약 4312조원)로 추정됐다. 천문학적 규모에 부정축재도 ‘대륙 스타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원 전 총리 입장에선 차라리 편지를 쓰지 않는 편이 나을 뻔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고위층의 ‘패밀리 비즈니스’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들은 형제나 자녀들을 내세워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극히 일부만이 ‘이례적으로’ 부정축재 의혹에서 벗어나있는 상황이다.
중국이 부정부패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부패가 자라나는 토양을 바꿔야 한다. 모든 권력이 공산당에 집중돼 있는 중국의 정치체제가 문제다. ‘공적 권력’이 ‘사적 권력화’된 현실에서 정치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편지라도 권력과는 거리가 먼 인민들에게는 더 큰 소외감만 안겨줄 뿐이다.
박영서 베이징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