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다. 3년 만에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게 돼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무엇보다 많이 반가워 해주셔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정현. 가수라는 타이틀도, 배우라는 수식어도 모두 제 것 같은 그가 돌아왔다.
가수 이정현의 역사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뷔음반 '렛츠 고 마이 스타(Let`s Go My Star)'를 발표, 타이틀곡 '바꿔'와 후속곡 '와'를 통해 가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에겐 '테크노 여전사'라는 별칭이 붙었고, 독특한 콘셉트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을 보고 혹자는 '신이 들린 것이 아니냐'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정현은 '반짝'하지 않았다. 이후 1년에 한 번씩 신보를 내놨다. 두 번째 음반은 더 '대박'이 났다. '평화' '너' '줄래' 등 수록된 곡들로도 큰 인기를 거뒀다. '미쳐' '반' '아리아리' '달아달아' '섬머 댄스(Summer Dance)' '따라해 봐' '철수야 사랑해' '보그 걸(Vogue Girl)' '수상한 남자' 등 수많은 곡들과 매번 다른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음악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1년에 하나씩 꼬박꼬박 음악을 내놓던 그가 지난 2010년 발표된 7집 이후에는 신보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팬들의 성화는 이어졌고, 이정현은 "거짓말쟁이는 될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준비 중이던 미니음반의 발표를 잠시 미루고, 스페셜 싱글 '브이(V)'로 컴백을 전했다.
'브이'는 일렉트로 스윙에 호러라는 장르를 접목한 핫스윙 팝 곡이다. '좀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정현은 섬뜩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지닌 좀비신부로 변신했고, 댄서들은 완벽한 분장을 통해 좀비로 탄생했다.
◆ 가수 이정현 "감사, 그리고 행복"
3년 만의 컴백에 이정현의 팬들은 물론, 대중들은 그를 반겼다. 더불어 '이번에는 어떤 파격적인 콘셉트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하는 기대감도.
"굉장히 모두 빨라진 것 같아요. 우선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적응을 못하고 있긴 한데(웃음), 오랜만인데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팬들도 좋아해주셔서 신기하고 감사드려요"
싱글 곡으로 돌아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팬'이다. 오는 8월 초께 중국에서 소화해야하는 일정이 있음에도 2주 동안 바짝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음반을 낸다고 약속을 했어요. 미니음반을 준비 중이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는 거예요. 사실 타이틀곡만 제외하고 나머지 4곡은 녹음도 다 마친 상태고요. 그런데 '브이'를 듣게 됐고, 놓치기 싫었지만 미니음반의 다른 곡들과는 색깔이 다르니까 싱글 음반을 내놓기로 결정했죠"
이정현은 '브이'의 멜로디에 신선함을 느꼈고, 여름에 '딱' 이라고 생각했다. 싱글 음반을 내자고 결심한 뒤로의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가사도 이정현이 직접 썼고, 뮤직비디오는 박찬욱, 박찬경 영화감독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툭 내뱉은 말에 두 감독이 모두 연출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결정됐다. 스스로도 신기해했다.
"영화 '파란만장'으로 인연이 있던 박찬욱, 박찬경 감독님과 저녁을 먹던 중에 '제 뮤직비디오 찍어 주실래요?'라고 물었는데, 음악도 들어 보시지 않고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어요"
이정현의 컴백이 늦어지는 이유는 대중들의 기대감도 한 몫 한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한 가수 이정현을 향한 대중들의 기대치는 높기 때문이다.
"준비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빨리 새 음반을 못 내놓는 것 같아요. 다른 가수들과 달리 제작비도 3, 4배 씩 더 들더라고요. 그러니 신중할 수밖에 없죠. 곡의 느낌이 좋았고, 오랜만이라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이번 곡으로 '1등을 하겠어' '내가 돌아왔어!' 라는 과격한 포부보단 즐기고 싶어요, 지금의 시간을"
'좀비'는 역시 이정현답다. 그에게는 3분 남짓한 무대를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처음에는 박찬욱 감독님, 박찬경 감독님, 그리고 저 모두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후 여름이 왔으니 '좀비'가 어떠냐고 의견이 모아졌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콘티도 완벽했고요. 하나의 단편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아이디어 회의를 몇 차례나 했어요. 두 감독님과 하게 되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고, 행복했어요. 1집부터 항상 혼자 해왔는데, 며칠 밤을 새도 즐거웠어요"
가장 재미있고,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돌아온 이정현. 잠을 못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마냥 즐겁다. 무대 위에서 신나게 즐기는 그의 열정은 1999년 그대로다.
◆ 배우 이정현 "목마름, 그리고 욕심"
이정현이 신보를 발표하지 않았던 3년, 그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2010년 중국에서 영화 '공자'를, 한국에선 '파란만장'으로 활약했다. 지난해에는 '범죄소년'을 통해 스크린에 모습을 비췄다. 사실 이정현은 가수 데뷔에 앞서 1996년 영화 '꽃잎'으로 연기자 데뷔를 했다. '일곱 개의 숟가락' '마리아와 여인숙' '야망의 전설'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연기자로 데뷔한 만큼 욕심도 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연기에 대한 목이 말랐어요. '파란만장'을 찍은 후에 영화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중에서 '범죄소년'을 찍게 됐고 촬영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더라고요(웃음)"
영화 속 이정현과 무대 위 이정현은 사뭇 다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는 않다.
"늘 약간 무거운 역할만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사실 힘든 캐릭터가 많아요. '파란만장', '범죄소년'도 그랬고요. 하반기에 또 하나의 작품을 준비 중이고요. 차근차근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려고 하고 있어요"
서른에 접어들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이후 만난 작품들을 보며 스스로 '만약 20대에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욕심이 생겼고, 연기에 대한 애착도 강해졌다.
"영화 작업은 우선 템포가 느리고, 감독 그리고 상대배우와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촬영하는 과정은 정말 힘들지만 필름이라는 게 오랫동안 남아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소중한 것 같아요"
◆ 여자 이정현 "사랑, 그리고 확신"
1980년생인 그는 어느덧 서른 초반을 넘어가고 있다. 꾸준히 활동을 해왔음에도 이렇다 할 스캔들도 없었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또 일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걸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3년 동안은 연인이 없었어요. 연애할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에요(웃음). 늘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일까요? 이제는 쉽게 만났다 헤어지는 만남은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오랫동안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려다 보니...없네요, 하하"
위로 4명의 언니가 있는 이정현은 조카만 일곱이다. 생각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예쁘다.
"여성으로서의 삶, 물론 저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래도 서두르면 안 될 것 같아요. 마음도 열려있고, 눈도 크게 뜨고 다닙니다(웃음)"
3년 만에 가요계에 돌아온 이정현은 몇 번이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을 했다. 또 대처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여유를 찾았다는 것.
"전과 비교하면 자세의 차이인 것 같아요. 여유 있게 대처하느냐, 아니면 무작정 부딪치느냐. 시간이 준 여유가 연기와 음악에서도 진실성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가수 혹은 배우를 할 때 집중을 해서 최선을 다하고,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요. 15년 즈음 되니까 결단력도 점점 더 확실해 지는 것 같고, 그동안의 경험을 좋은 쪽으로 이용하려고 해요"
이정현은 지금 가장 행복하다. 가수로 무대에 오를 수 있고, 곧 연기자로도 새로운 작품에 돌입한다. 게다가 예전엔 누릴 수 없었던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소화해내는 이정현. 가수, 또 배우 이정현의 향후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