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맞서 현금영수증제 도입…사회적 편견·부조리에 맞서온 김성은 경희대 교수, 그녀가 말하는 인생이란…
학교 설립자였던 아버지, 교육사업에 전재산 쏟아부어…고등학생 시절엔 등록금 마련하려고 전화기 팔기도…
중학교 입학하고서야 알파벳 배워 첫 영어시험 0점 받기도…대입공부 대신 고전·문학소설 탐독…
법 지키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 만들기 위해 앞장…도입 주도한 현금영수증 OECD국가서도 감탄할 정도
美회계사로 교수로 경영교육학회 첫 여성회장으로…“때론 실패하고 때론 성공하는 게 인생…다가올 삶이 더 기대돼”
당신은 기적을 믿는가.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기적의 시대는 영원히 현재”라고 했다. 기적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있으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에게 일어난다. 1970년 중학교 첫 영어수업에서 ‘0점’을 맞은 소녀가 있었다. 10년 후 이 소녀는 미국 뉴욕 맨해튼 금융가의 회계사가 됐다. 1980년 미국 대학원을 다니며 글로벌 리더를 꿈꾸던 가난한 한국인 유학생은 훗날 ‘글로벌 리더스 포럼’을 만들었고, 1990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한 여성은 20년이 지나 경영학 분야 학회에서 여성 최초로 회장이 됐다. 2000년 대한민국의 지하경제를 비판하던 한 여교수는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몇 년 후 현금영수증제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내 투명성 있는 거래를 실현시켰다. 이 기적같은 얘기는 수십년간 사회의 편견, 부조리와 맞서 싸워온 김성은(56) 경희대 교수에 대한 것이다. 봄바람이 휘날리고 벚꽃잎이 흩날리던 4월 말 어느날 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김 교수를 만나러 가던 이날 오전 내내 세찬 봄비가 주르륵 내렸다. 거기다 바람까지 거셌다. “인터뷰 기사에 넣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동행한 사진기자와 주고받은 얘기는 온통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김 교수를 만나자마자 갑자기 비가 그치고 밝은 해가 떴다. 약속이나 한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김 교수는 “이게 바로 기적”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로 가는 동안 여러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구내식당 아주머니에게 오랜만이라며 안부인사를 하고, 동료 교수에게는 “학회준비와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며 말을 걸었다. 중간고사를 막 치르고 나와 앞을 지나는 제자에겐 “시험 잘 봤느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성적이 평소 기대에 못 미쳤나 보다. 쿨한 느낌의 김 교수는 그러나 카메라 앞에선 소녀 같았다. “자연스럽게 웃지 못해요. 웃지 않으면 사진이 무섭게 나올텐데…”라며 소녀같이 해맑게 웃어보였다.
▶사춘기는 사치였다=겉은 화려했지만 그 속은 텅텅 비어 있는 유년시절이었다. 김 교수의 아버지는 서라벌예술대학(1972년 중앙대학교와 합병) 설립자인 김세종(2000년 작고) 박사다. 주변 지인은 큰 집에 살고, 학교 설립자의 딸인 어린 김성은이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업가가 아니라 교육자였어요. 학교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데 전 재산을 쏟아부었죠. 학교가 굉장히 크고 집이 넓었지만 가족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어요. 부채 이자를 갚기 위해 매일 고민해야 했죠. 저는 좋은 옷을 입어본 적도 없고, 이화여고 시절에는 등
록금이 없어서 전화기를 판 적도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 방황을 할 여지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굉장히 조숙했어요. 사춘기를 받아주는 집안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방황하거나 사춘기를 겪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내가 처한 환경에 잠시 화가 나기도 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상처를 덜 받게 됐어요. 이때부터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또래 친구보다 빨리 철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모범생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몸이 허약해 학교를 잘 가지 못했고, 영어도 중학교 입학해서야 알파벳을 배웠다. 중학교 첫 영어시험에서는‘ 0점’을 맞기도 했다. 이화여고 재학 당시에는 부친인 김 박사가 미국에 건너갔기 때문에 자신도 곧 미국에 가게 될 것으로 생각해 대학 입시공부를 하지 않았다. 대신 집 벽 한면에 가득 채워져 있는 고전ㆍ문학소설을 전부 읽었다. 수업시간에 교과서 대신 몰래 소설책을 봤고, 시험을 며칠 앞두고는 혼자 공부해 시험을 치렀다.
“요즘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책을 많이 본 것이 논리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어요. 책을 통해 보이지 않는 힘이 생긴 것이죠. 지각도 많이 하고, 수업시간에 딴짓도 했지만 시험 때는 집중력 있게 공부했기 때문에 하위권에 들어간 적은 없습니다.”
고3이 되자 미국 유학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여름방학 때 공부에만 집중해 1975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다=대학에 들어간 뒤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와 일본 등 전세계를 돌며 일하는 게 꿈이었다. 이를 위해 프랑스어ㆍ일본어 학원을 다녔다.“ 영어는 미국 유학 가면 금방 될 것이라고 생각해 공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미국에 가서야 깨달았죠.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영어 에세이를 겨우 썼어요.”
김 교수는 특히 당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남자에게 예속화하는 것이 가슴아팠어요. 당시 살던 동네에 집창촌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사회를 바꾸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코넬대 입학지원서에서도‘ 한국의 여성에 대한 차별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여성에게 희망을
줄 리더가 되기 위해 입학하고 싶다’는 내용을 넣을 정도였죠.”
1980년에는 코넬대 MBA(경영학 석사)에 입학했다. 당시 MBA에 입학하는 한국인은 물론 여성 자체가 흔치 않았다“. 미국에서 대학을 갈 때 신방과 전공을 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반대했어요. 의사ㆍ변호사ㆍ회계사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 제가 수학을 잘했기 때문에 경영대학을 선택했어요.”
김 교수는 MBA 첫 학기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남보다 몇 배나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기적 같은 일을 겪기도 했다“. 세 번째 학기 때 아버지께서 등록금을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등록금이 납부됐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때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 등록금을 대신 내준 것 같아요.”
여성을 비하하는 한국인 유학생과 술배틀을 벌인 적도 있다. 하루는“ 여자가 술을 먹을 줄 아나, 뭘 할 줄 아나. 여자가 왜 경영학을 공부하느냐”는 말을 듣고 한국인 남학생과 맥주캔을 놓고 누가 술을 잘 마시는지 다툼을
벌였다“. 그 남학생은 맥주 12캔을 마시고 뻗었고, 저는 16캔을 마셨어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정신을 잃었는데 이틀간 몸이 아팠죠.”
영어실력이 늘자 자신감이 생겼고 졸업때까지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1982년 졸업 후 교수의 추천을 받아 세계적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에서 회계사로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1983년에는 코넬대에서 만난 한국 교포 남학생과 결혼도 했다.
대형 회계법인에 들어가는 것이 꿈과 같은 것이었지만 아서앤더슨에서 회계감사 업무를 보는 것은 한국인 여성에게 매우 힘든일이었다. 우선 언어장벽이 높았다.
“회계감사는 피감사회사 사람과 유창하게 대화해야 하고, 인간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감사보고서를 출력하면 영어 오타를 찾아야 했어요. 한글로 오타 찾기도 힘든데 영어를 찾는 것은 어떻겠어요. 밤을 새우며 오타를 찾았죠. 밤 10~11시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바로 바닥에 쓰러졌어요.”
1985년에는 컨설팅업체 쿠퍼스앤라이브랜드의 세무컨설턴트로 자리를 옮겼고, 회사를 다니며 1986년 남가주대(USC)에 입학해 세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한국 기업의 진출이 늘면서 회사로부터 한국을 담당하는 팀헤드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여성은 결혼생활에 충실해야 한다는 편견이 심했어요.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그만두고 1990년 한국으로 들어와 시집살이를 하게 됐어요. 제 커리어가 중단된 시기였죠.”
▶투명한 사회를 위해=한국에 온 뒤 시간강사 일을 하기도 했고, 애니메이션 관련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이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
“1996년 덕성여대 회계학 교수 모집이 있었어요. 저는 마감일에 하루 늦게 지원해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한 교수가 뽑혔고 학기가 시작됐는데 갑자기 교수모집이 1년 계약직으로 바뀌었어요. 원래 하기로 했던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고 대신 제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덕성여대에서 인기교수로 이름을 날린 뒤 2003년 경희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화려한 경력이 시작됐다. 금융감독원 감리위원, 기획예산처 공기업평가위원,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개혁심의위원 등을 역임하며 정부 경제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촉구하는 일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정부 및 기업 회계 시스템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실제 사례를 분석한‘ 투명성’이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다.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결국 힘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의 권익까지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법을 지키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야하죠.”
김 교수는 특히 2002년 국무조정실 정책평가위원으로 있을 당시 현재의 현금영수증제도를 이끌어냈다. 정부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김 교수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이 제도는 시행됐고, 투명한 조세행정으로 가는 제도적 기반으로 자리잡았다. 김 교수는 2004년 3월 현금영수증제도로 조세정책 분야의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당시 현금영수증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어요. 하지만 투명한 사회가 되기 위해 거래에 자취를 남겨야 한다고 일관성 있게 주장해 제도를 이끌어냈죠. 요즘에는 경제협력개
발기구(OECD) 국가 관료가 한국에 와서 감탄하는 게 현금영수증제도일 정도죠.”
2010년에는 한국경영교육학회에서 여성 최초로 회장으로 선출됐다. 경제ㆍ경영학분야는 아직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지 못해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쉽지 않다. “한국경영교육학회의 회장이 되면서 여성 리더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열심히 학회를 꾸려 나갔습니다. 남들 못하니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득권층에 바른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죠.”
▶성스러운 은혜를 베풀다=김 교수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2008년 성은재단을 만들어 매년 3000만~4000만원으로 필리핀ㆍ베트남ㆍ스리랑카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 성은재단은 100% 자원봉사예요. 사무실도 없고, 직원도
없습니다. 재단 로고도 제가 직접 만들었고, 온라인 홈페이지도 직접 관리하고 있어요. 관리비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면 더 많은 아이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2011년부터는 글로벌 리더스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살아나야 진정한 복지사회가 구축될 수 있다’는 주제 아래 국가 이슈를 글로벌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포럼이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 등이 강연
자로 나섰다.
“양분되는 국론으로 나라가 흔들리는 것이 안타까워 글로벌 리더스 포럼을 발족했습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소통과 융합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각기 다른 분야의 얘기를 들으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교육자로서도 열정적이다. 경희대로부터 2007년 우수상담 교수상과 2009년 베스트티처(Best Teacher)상을 받기도 했다.
“예전에는 집중해서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사랑으로 생각됐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못해요. 강의 스타일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학생도 일부 있죠.”
김 교수는‘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처럼 앞으로의 인생이 더욱 설레고 기다려진다. “일찍 성공한다고 좋아할 것도, 실패했다고 슬퍼할 것도 아니예요. 저는 0점도 맞아보고 1등도 해봤어요. 단칸방에 살던 때도 있었고, 크고 좋은 집에서도 살아봤죠. 졸업하자마자 대형 회계법인에 들어가서 부러움을 샀지만 뒤늦게 교수직에 도전해야 했지요.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해보는 게 바로 인생 같아요.”
김성은 교수가 걸어온 길
▶1975년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1979년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 학사 ▶1982년 코넬대학교 MBA(경영학 석사) ▶1982년 아서앤더슨 회계감사 ▶1985년 쿠퍼스앤라이브랜드 세무컨설턴트 ▶1989년 남가주대학교 MBT(경영세법학 석사) ▶1996년 덕성여자대학교 회계학 교수 ▶1998년 재경부 금융발전심의위원 ▶1999년 기획예산처 공기업 평가위원 ▶2002년 국무조정실 정책평가위원 ▶2003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2004년 대통령표창(조세정책-현금영수증제도) ▶2008년 성은재단 이사장 ▶2009년 한국경영교육학회 회장 ▶2010년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011년 글로벌 리더스 포럼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