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KBS는 다큐멘터리의 종가다. ‘KBS스페셜’ ‘역사스페셜’ ‘환경스페셜’ ‘과학스페셜’ 등의 이름으로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두 달 전 이 모두를 통합해 다큐멘터리 콘텐츠 허브를 지향하는 ‘KBS 파노라마’가 탄생했다. 산고가 작지 않았다. 각 분야 ‘스페셜’마다 고정 시청자층이 있었는데, 정치ㆍ경제ㆍ역사ㆍ자연ㆍ사회ㆍ문화ㆍ인물ㆍ환경ㆍ과학ㆍ문명ㆍ국제 등 전 분야를 통합하는 ‘잡탕밥’을 만들어 효과를 볼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벌써부터 시청률과 영향력 면에서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윤진규 CP는 “20년간 쌓아온 KBS스페셜과 환경ㆍ역사ㆍ과학스페셜 제작인력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공영 방송 최고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했고 론칭 초기 우려도 있었지만 시청률뿐 아니라 영향력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매체가 늘어나고 다큐가 많아진 만큼 경쟁력 있는 다큐, 미래를 지향하는 관점이 반영된 다큐, 글로벌 시사를 다루는 다큐는 더욱 필요해졌다. 그 역할을 파노라마가 맡게 될 것 같다. 공영 방송 최고의 다큐물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겨냥하겠다는 의도는 조금씩 먹혀들어가고 있다.
지난 9일과 16일 방송된 ‘가정의 달 2부작’ 기획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다큐로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10%(닐슨 수도권)를 돌파했다. 동 시간대 타 채널이 드라마를 편성하는 시간에 비인기 장르인 다큐가 두자릿수 시청률을 올린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도시와 시골에서 외롭게 방치되고 방임된 아이들의 문제를 르포 형식으로 다룬 이 프로그램은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방임된 아이들의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사안이라는 목소리였다. 게시판에는 “무조건 돕고 싶다”,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이슈 제기형 프로그램은 파노라마가 추구하는 세 원칙 중 하나다. 2부작 ‘당신의 몸’을 통해 다이어트와 지방 흡입 등 몸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파노라마가 추구하는 두 번째 원칙은 시의성과 심층성을 갖춘 프로그램이다. 아베노믹스와 일본 우경화를 다룬 ‘아베의 질주’ 편과 북핵 위기를 다룬 ‘김정은, 한미중의 딜레마’ 등이다. 특별히 호평받은 ‘아베의 질주’ 편은 2%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하는 금융 완화 정책 등 대규모 재정 확대 전략이 당장은 경기를 부양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예상을 연금으로 살아가는 일본 노령층에 대한 취재와 경제전문가의 진단으로 내놨다는 점에서 공감도를 높였다.
셋째는 예전 환경ㆍ역사ㆍ과학스페셜의 제작 노하우와 전문성에 기반을 둔 다양한 장르의 고품격 다큐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2부작 ‘쿠시나메’ 편은 신라에 들어와 공주와 결혼한 페르시아 왕자의 이야기다. 설화집에 바탕해 만든 다큐지만, 아랍이 페르시아를 침공했을 때 사산조 페르시아 왕족들이 대거 당나라로 망명했고, 정치적 의미의 국제결혼 사례 등을 들어 가능성을 추리했다. 방송이 나간 후 이 다큐를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구입해 이란 전역에 방송하고, 한국과 사절단을 교류하고 싶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3부작 ‘잠 못 드는 행성, 지구’ 편도 호평을 받았다.
‘파노라마’는 제작 시스템이 기존 다큐 팀과는 다르다. 팀을 만들어 아이템을 만드는 게 기존 방식이라면 파노라마의 아이템은 외부까지 문호를 개방해 제안 공모를 통해 정한다. 철저한 공개경쟁 시스템이다. 국장과 EP, 현업 PD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아이템을 채택한다. 가능성이 있는 기획물은 조금 더 숙성시켜 탄생하기도 한다. 기존 프로그램의 정형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담대한 기획이 가능해졌다. 결국, 제작 중심에서 기획 중심의 창의적인 조직으로 바뀌었고, 공급자 중심이 아닌 시청자 중심으로 아이템을 선정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시의적절하고 완성도 높은 기획물들이 대기 중이다. ‘백정아버지와 서양 의사 아들’(5월 31일), 한국전쟁에 투입되고 다시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의 이야기 ‘아버지의 나라 재일동포 청년들의 선택’(6월 6일), 조세피난처를 집중 해부한 ‘검은 돈의 보물섬, 조세피난처’(6월 13일), ‘1000㎞ 엠티쿼터를 가다’(6월 20일ㆍ27일) 등이다. 김규호 다큐멘터리국장은 “BBC는 ‘BBC 다큐’, NHK는 ‘NHK 스페셜’이 있다. KBS도 ‘파노라마’로 시청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품격 높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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