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리얼 버라이어티는 살아있지만 변곡점은 넘겼다. 그 틈새를 오디션 서바이벌류 예능들이 메우더니, 오디션 예능도 남발되는 경향을 보이며 그 탈출구의 하나로 다큐예능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큐예능은 제작진의 과욕으로 조작 논란에 휩싸였던 ‘정글의 법칙’과 ‘인간의 조건’ ‘땡큐-스님, 배우 그리고 야구선수’ ‘행진-친구들의 이야기’ 등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아빠 어디가’도 다큐예능의 속성이 강하다.
기존 버라이어티 예능이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상황과 기법을 자주 설정한다면 다큐예능은 진행자도 없고, 콩트와 설정이 거의 없다. 주어진 현실에 자연스럽게 부딪히며 나오는 소소한 반응이 다큐예능의 포인트다. 그런 것들이 작위적으로 웃기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온다. 힐링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상대가 보이는 반응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다큐예능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유행의 연장선에 있다. 연예인보다는 일반인의 시점을 보여준다. 그러니 연예인도 다큐예능에 나오면 일반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토크쇼에서도 일반인이 연예인에 비해 불리하다는 건 옛말이다. 일반인들이 출연해 그들의 고민을 들어보는 ‘안녕하세요’와 특이한 생활습관이나 가치관을 지닌 일반인이 등장하는 ‘화성인바이러스’의 인기가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월요 예능 중에서 ‘안녕하세요’가 연예인들이 나오는 ‘토크클럽 여배우’와 ‘힐링캠프’보다 시청률이 더 높다. 일반인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 ‘짝’이 연예인들 간에 짝을 찾는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큰 반응이 나온다.
‘아빠 어디가’에서 아빠는 연예인이지만 아이들은 미지의 인물이고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아빠는 안전장치다. ‘아빠 어디가’의 인기는 미지의 인물이 보여주는 의외성을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는 증거다.
대중은 딱 보면 알 수 있는 캐릭터는 식상해한다. 미지의 인물이거나 자주 보았던 연예인이라도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원한다. ‘인간의 조건’은 ‘개그콘서트’에서 무수히 보았던 개그맨들이 그대로 나오지만, ‘개콘’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무대 뒤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양상국이 가난한 부모님을 짠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개콘’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
다큐예능은 예능은 무조건 웃기고, 어느 정도의 자극과 선정의 임팩트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는 탄생하기 힘든 장르다. 다큐예능은 시뮬레이션을 할 수 없어 위험한 부분도 있다. ‘인간의 조건’의 신미진 PD의 기획안은 바로 통과되지 못했다. 기획안만 보면 너무 심심하다. 메인 MC도 없고 콩트도 없어 캐릭터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이 힘들어지면서 실내에서 연예인들이 찧고 까불며 웃음을 유발하는 예능보다 자연스럽고, 차라리 몸을 움직이거나, 평소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을 실천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나누는 프로그램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걷기만 하는 고행 프로젝트인 ‘행진’도 과거 같으면 예능물이 되기에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스타들의 6박7일 국토대장정 이야기를 통해서도 사람들은 소소한 재미를 느끼면서 충분히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이나 강연을 통해 ‘인위적인 멘토’들이 생겨났다면 다큐예능을 통해 ‘자연적인 멘토’가 생기고 있다. 물론 ‘멘토’가 직업인 전문멘토들을 다큐예능에 투입시켜 공감과 힐링이라는 목적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큐예능은 ‘정글의 법칙’에서 경험했듯이, 편집과 자막에서 과욕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자연다큐멘터리처럼 찍어 그대로 내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큐예능은 매우 비효율적인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은 잔소리를 싫어한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공감하게 하고 덤으로 약간의 교훈을 얻게 하는 것이 다큐예능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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